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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들어가겠다" 천안함을 위해 30만 원 낡은 장비 하나로 떠난 '해군의 영웅'

“내가 직접 들어간다” 천안함 침몰 직후 실종자 수색이 한창이던 2010년 3월 말, 해군 특수전여단 소속 한주호 준위는 “경험 많은 내가 먼저 들어가겠다”며 위험한 바다 속으로 뛰어들었다.사고 해역은 수심 약 25m, 강한 조류와 차가운 수온으로 젊은 UDT 대원들도 버티기 힘든 환경이었다.한 준위는 “물 아래엔 내 아들 같은 아이들이 있다”며, 수색 5일째 되는 날까지도 맨 앞에서 잠수를 이어갔다.낡은 장비와 반복 잠수가 부른 비극 당시 수색 현장엔 잠수병 치료에 필수인 감압챔버가 1기뿐이었고, 잠수요원들은 교대로 심해를 오가다 탈진과 잠수병 위험에 노출됐다.​한 준위는 1980년대 도입된 구형 장비를 사용한 것으로 전해지며, 반복 잠수로 이미 체력과 체내 상태에 큰 부담을 안고 있었다.결국 그는 작..

카테고리 없음 2026.02.19

"백선엽 장군에 가려졌지만" 6·25 전쟁의 숨은 주인공 '5성 장군' 정체

숨은 영웅, 김홍일 백선엽 장군의 이름이 더 자주 언급되지만, 6·25 전쟁 초기 지도를 지켜낸 숨은 영웅으로 꼽히는 인물이 김홍일 장군이다.독립운동가·광복군 출신·전쟁 전략가라는 세 가지 얼굴을 모두 지닌 그는, “별 둘은 광복에, 별 셋은 구국에 바쳤다”는 말로 요약되는 삶을 살았다.독립군·광복군 출신 장군 1900년 함경남도 북청에서 태어난 그는 중국으로 건너가 군관학교를 졸업한 뒤 국민혁명군 장교로 일본군과 싸웠다.이후 김구의 요청으로 한국광복군에 합류해 참모장으로 활동하며, 무장 독립투쟁의 작전·교육을 책임졌다.국군 창설에 기여한 ‘뼈대’ 광복 후 귀국한 김홍일은 국군 창설 과정에서 육군사관학교장, 육군참모학교장 등을 맡아 장교 양성과 교육 체계를 세우는 데 힘을 보탰다.중국·광복군에서 쌓은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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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이 진짜 충성한 실세" 김정은 사망시 1순위 김주애 아닌 '이 인물'

김주애, ‘후계 상징’이지만 기반은 아직 전무 국정원은 최근 국회 보고에서 “김주애가 후계 내정 단계에 들어섰다”고 평가하며, 북한이 공식 행사에서 그녀를 의전 서열 2위처럼 대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ICBM 발사 현장, 열병식, 군부 행사 등에서 김정은 옆을 지키며 ‘미래 지도자’ 이미지를 쌓고 있지만, 실제로는 10대 초반의 미성년자로 당·군 내 독자 세력이 없다.​해외 전문가들도 “향후 5~15년 뒤를 내다본 장기 카드일 뿐, 지금 당장 권력을 장악할 수 있는 후계자는 아니다”라고 선을 긋고 있다.김여정, 10년 넘게 다져온 ‘2인자’ 반면 김여정은 최소 2014년부터 김정은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하며 실권을 행사해 온 인물로, 미국 CSIS와 한국 국책연구기관 등은 그녀를 “북한 내 2인자”로 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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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무기 산 이유는 투자다" 무기 팔고 싶으면 기술 이전하라는 '이 나라'

“팔고 싶으면 투자부터 해라” 폴란드 정부가 K2·K9·FA-50·천무를 사들이며 ‘K방산 큰손’이 된 뒤, 이제는 “무기만 팔 생각 말고 우리 산업에 투자하라”는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던지고 있다.콘라트 고워타 폴란드 국유자산부 차관은 “단순 조립라인 유치에는 만족하지 않겠다”며 “기술 이전과 글로벌 공급망 편입이 필요하다”고 못 박았다.​사실상 앞으로의 대형 무기 계약은 생산·기술·투자를 동반한 패키지가 아니면 어렵다는 신호다.“이제 더 이상 순진한 고객은 아니다” 고워타 차관은 미국산 무기 도입을 예로 들며 “그동안 안보 우산 안에 머물기 위한 일종의 ‘안보 비용’으로 상호 투자 없이 사온 측면이 있었다”고 말했다.​그러면서 “이런 접근은 우리를 ‘순진한 고객’으로 만들었다”고 평가 절하하며, 과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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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을 창설" 이순신 장보고와 함께 전설로 불리는 '해군의 아버지' 정체

해군의 아버지, 손원일이라는 이름 손원일은 독립운동가 손정도 목사의 장남으로 태어나, 광복 직후 “우리 바다는 우리가 지킨다”는 신념으로 대한민국 해군을 세운 인물이다.해방 3개월 뒤인 1945년 11월 11일, 그는 민간인 신분으로 해군의 모체인 ‘해방병단’을 조직하며 사실상 한국 해군 창설에 착수했다.​이 공적으로 그는 훗날 초대 해군참모총장, 제5대 국방부 장관, 초대 서독 주재 대사를 지내며 ‘대한민국 해군의 아버지’로 불렸다.평안남도 강서에서 상하이까지, 꿈을 키운 청년 시절 1909년 평안남도 강서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평양에서 자라며, 일제 치하에서 고문까지 당한 경험을 남겼다.​이후 상하이로 건너가 국립중앙대학 항해과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중국 해군부 유학생 선발에 합격해 독일로 건너..

카테고리 없음 2026.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