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전 영웅이 된 간호장교 오금손, 총을 든 ‘나이팅게일’의 진짜 기록
1950년 6.25 전쟁 초기, 국군 부상병들을 돌보던 야전병원은 전선만큼이나 치열한 생존과 절체절명의 공포가 이어지는 곳이었다. 이런 극한 환경 한복판에서, 백골부대 소속 간호장교 오금손 소위는 남다른 용기와 침착함으로 대한민국 전쟁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오금손 소위는 독립운동가 오수암의 외동딸로 태어나 광복군 출신으로 항일운동에 참여했던 애국 계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적 6명 사살, 나머지 제압…전설로 남은 ‘실전 간호장교’
1950년 8월, 오금손 소위가 근무한 야전병원이 북한군 11명의 기습 공격을 받는 위기에 직면했다. 오금손 소위는 자신이 소지한 카빈 소총 한 자루로 단숨에 적군 6명을 사살했고, 나머지 5명은 그 저지 불가한 진압 의지에 압도되어 현장을 탈출했다. 전투로부터 동료 장병과 의료진, 그리고 전상자들을 지켜낸 이 일화는 ‘여성 간호장교의 한계를 뛰어넘은 용맹함’으로 한국군 사상에 길이 남았다.

전쟁 속 여성 간호장교 1,200명, 참전·희생의 상징
전쟁 기간 중 오금손 소위뿐 아니라 총 1,200여 명의 여성 간호장교가 전국 전선과 야전병원에서 부상병을 돌보았다. 이들은 정비·통신·후송 등 각종 전투지원 업무에도 투입됐고, 실전에서는 남성 장교 못지않은 전투력을 보이며 곳곳에서 실전을 치렀다. 오금손 소위는 강인한 체력, 냉철한 판단, 목숨 건 결연함으로 전시 의료지원의 본보기로 평가받는다.

공로로 2계급 특진·국민훈장 영예, 전쟁 영웅으로 국가적 존경
야전병원 전투 이후 오금손 소위는 국민훈장과 2계급 특진의 영예를 안았다. 포항 일대 격전과 인민군 포로생활, 극한 고문 탈출 등 잇따른 고난에도 불구하고, 후방 병원 운영과 오지 환자 치료, 국가안보 강연 등 전후 복구운동에도 헌신했다. 모든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항상 ‘최전선의 간호장교’로 자신을 정의하던 오금손 소위의 일대기는 내내 국가와 동료를 먼저 생각한 희생정신의 표본이 되었다.

전후에도 ‘안보 강연 백골할머니’로 존경받다
오금손 대위는 군 복무 후에도 ‘안보강연 백골할머니’로 널리 알려졌으며, 지역 복지활동, 광복군·독립운동가 지원, 자연보호 등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에 헌신했다. 2004년 74세 생을 마감한 후 대전 현충원에 안장되었고, 그의 유산은 대한민국 호국영웅의 한 획을 그었다.

한국군 여성 군인의 상징, ‘재평가되는 국민 보훈 영웅’
최근 국방부·보훈처·군사학계는 오금손 대위를 6.25 전쟁영웅, 여성 군인 롤모델로 선정해 전군 캠페인과 교육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녀의 전투담과 생애는 전시 의료의 소중함, 여성 군인의 역할 확장, 국민적 용기의 상징으로 꾸준히 재조명되고 있다. 전쟁의 인간극장 한복판에서, 총을 든 나이팅게일 오금손의 진짜 이야기는 오늘날까지도 깊은 울림을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