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90년대 하이틴 스타, 이상아의 화려한 시작과 깊은 그림자
1980년대 하이틴 스타의 대표주자, ‘국민 여동생’으로 불리던 배우 이상아(1972년생). 중학교 1학년 때 KBS 드라마로 데뷔해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최진실, 하희라, 채시라, 김혜수, 이미연 등과 함께 80~90년대를 풍미했다.
하지만 전성기의 화려함과 달리, 이상아의 사생활은 눈물과 배신, 그리고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녀는 최근까지도 방송과 SNS를 통해 세 번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그 속에서 겪은 충격적인 사연을 솔직하게 고백하며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첫 번째 결혼 – “사랑도, 도피도 아니었던 선택”
이상아의 첫 결혼은 26세, 개그맨 김한석과의 도피성 결혼이었다.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던 가장의 무게에서 벗어나고 싶어, 자신을 좋아해주던 김한석과 결혼했지만, 결혼 4개월 만에 별거, 1년 만에 이혼했다. 이상아는 “결혼도 얼렁뚱땅 그쪽 부모와 휩쓸려서 하게 됐다. 정말 도피였다”고 고백했다.
남편의 요구에 따라 친정 지원을 끊고, 차도 팔고, 본가에 들어가겠다는 조건까지 모두 들어줬지만, 남편은 “너랑은 못살겠다. 살도 닿기 싫다. 나는 널 너무 싫어해”라며 이혼을 통보했다. 이상아는 이혼 후 방송에 나온 전남편의 “이혼은 상대를 죽일 수도 있기 때문에 하는 거다”라는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위자료와 집은 남았지만, 인기와 명예, 건강까지 모두 잃었다”고 토로했다.
두 번째 결혼 – “재벌이라더니 사기꾼…혼전임신까지”
첫 이혼 후 이상아는 지인 소개로 재벌 2세라던 남성과 두 번째 결혼을 한다. 그러나 결혼 후 남편의 재력은 모두 거짓이었고, 가족에게도 사기를 치고 다니는 인물임을 알게 됐다. 혼전 임신까지 했던 이상아는 결혼 직후부터 신혼집 잔금 미납, 축의금 횡령, 형부에게 경매로 넘어간 집을 파는 사기 등 금전적 피해를 겪었다.
딸의 돌잔치만 치르고 바로 이혼 도장을 찍었고, 이혼 후에는 모든 재산을 잃고 빚까지 떠안았다. 짐을 컨테이너에 맡기고, 지인의 집에 얹혀살며 힘든 시기를 보냈다. “돈만 보고 결혼한 것,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결혼했는데 거지랑 할 줄은 몰랐다”고 울분을 토했다.
세 번째 결혼 – “딸에게 아빠를 만들어주고 싶었지만…”
두 번째 이혼 후, 이상아는 딸을 위한 결혼을 선택했다. 딸에게 아빠를 만들어주고 싶어 세 번째 남편과 동거를 시작, 이후 재혼했다. 10여 년간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는 듯했지만, 결국 남편의 외도로 또 한 번 상처를 받았다. 같은 회사 여직원과의 불륜이 드러나자, 이상아는 집에서 도망쳐 나와 13년 만에 이혼을 결심했다.
모든 경제권은 남편에게 있었고, 하루 만 원씩 받고 움직였다. 자신이 번 돈도 제대로 쓸 수 없었고, 2천만 원을 모아 방을 얻어 3년을 버티며 합의 이혼을 요구했다. 딸에게 친아빠인 줄 알게 하려고 성까지 바꿨지만, 결국 친아빠가 아니라고 밝히고 이혼하게 됐다.
“원래대로 돌려놓고 싶다”며 속상함을 드러냈다.
“결혼을 너무 쉽게 생각했어요” – 이상아의 진심 어린 고백
이상아는 방송에서 “결혼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가장 인기 많던 배우였지만, 화려함 이면엔 혼자 감당해야 했던 외로움과 고통이 있었다. “첫 번째 단추를 잘못 끼웠다면 지금의 나는 훨씬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었을 것”이라며, 첫 결혼의 상처가 모든 인생을 바꿔놓았다고 회고했다.
화려한 전성기, 고통의 결혼, 그리고 자기 인생의 시작
이상아는 80~90년대 하이틴 스타에서, 세 번의 결혼과 이혼을 겪은 파란만장한 인생의 주인공이 됐다.
돈과 사랑, 가정 모두를 경험했지만, 결국 자신을 지키는 것이 가장 소중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의 솔직한 고백과 새로운 삶은 오늘날 많은 이들에게 진정한 용기와 위로를 전하고 있다. 이상아의 이야기는 “결혼도, 이혼도, 자기 인생도 모두 자기 선택”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