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마니아가 다시 본 한국 방산의 무게
루마니아가 차기 장갑차 사업을 추진하면서, 한때는 독일 KF41 ‘린кс’ 쪽으로 기울었다는 보도가 나왔다가 곧바로 부인하는 소동이 있었다.
하지만 한국 한화의 레드백이 80% 현지 생산과 2030년 전량 납품을 제안하면서 판세는 단순 가격·성능 경쟁을 넘어, “누가 진짜 루마니아를 방산 허브로 키워줄 것인가”라는 산업 전략 싸움으로 바뀌었다.
과거 한국 기술을 과소평가하던 시각이, K9·레드백의 연속 수출과 ‘현지화 패키지’ 앞에서 다시 계산기를 두드리는 분위기로 바뀐 셈이다.

레드백, “현지화 80%+2030년까지 전량” 승부수
한화는 루마니아 차기 보병전투장갑차(IFV) 사업에 레드백을 제안하며, 최대 80%까지 루마니아 현지 생산을 보장하겠다고 공식화했다.
이는 EU SAFE 메커니즘이 권고하는 역내 생산 비중 65%를 크게 웃도는 숫자로, 유럽 방산 규범을 넘어서는 수준의 로컬 콘텐츠를 약속한 셈이다.
여기에 2030년까지 전체 물량 인도 완료라는 일정까지 제시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촉박해진 동부전선 재건 일정에 딱 맞춘 패키지를 내놓았다.

담보비차 K9 공장, “말뿐인 현지화”와의 차이
한화는 이미 루마니아 담보비차(드럼보비차) 카운티 페트레슈티에 K9/K10 생산·정비를 위한 ‘H-ACE Europe’ 공장을 착공했다.
부지 약 18만㎡ 규모에 조립라인, 성능·인증 시험장, 1.7km 주행 시험로, R&D·MRO 시설까지 포함된 이 공장은 K9뿐 아니라 향후 IFV·장거리 타격체계·UGV까지 생산할 수 있는 유럽 허브로 설계됐다.
한화는 K9·레드백 생산이 본격화되면 직간접 2,000개 이상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루마니아 중소 방산기업이 차체·포탑·전자장비 공급망에 편입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 제시했다.

레드백 성능, 이미 한 번 ‘유럽 기준’ 통과했다
레드백은 전장 약 7.7m, 전폭 3.6m, 전고 3.7m, 전투중량 40톤대 초반의 대형 IFV로, 1,000마력급 엔진을 통해 도로 기준 시속 70km, 야지 40km 이상 기동이 가능하다.
주포는 30mm 기관포와 공축 기관총, 상부 원격무장체계, 스파이크 계열 대전차 미사일 통합이 가능해, 전차 위협까지 염두에 둔 화력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호주 LAND 400 Phase 3 평가에서 라인메탈 KF41을 상대로 신뢰성·기동·방호·승무원 생존성 측면에서 우수 판정을 받은 전력이 있어, 성능 자체는 이미 서방권에서도 검증된 셈이다.

STANAG 6급 방호+능동방어, 생존성에 올인
레드백은 STANAG 4569 Level 6급 방호력을 목표로, 30mm 기관포탄·대전차 지뢰에 대응하는 장갑 설계를 적용했다.
기본 장갑 위에 모듈식 복합장갑과 하부 지뢰 방호 구조를 더해, 장갑차급 플랫폼 중 상위권 방어력을 확보했다는 평가가 많다.
여기에 하드킬 능동방어체계(APS)를 탑재해 대전차 미사일·로켓탄을 요격하는 기능까지 더하면서, ‘살아남는 IFV’를 전면에 내세웠다.

독일 린кс에 기운 듯했던 루마니아, 아직 끝난 싸움은 아니다
루마니아가 독일 KF41 ‘린кс’를 선택했다는 보도가 한때 유럽 언론에 나왔지만, 정부는 공식적으로 “결정된 바 없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실제로 2026년 초 기준, 루마니아는 약 298대 규모 KF41 도입·현지생산 방향으로 크게 기울었다는 보도와 함께, EU 자금이 역내(독일·헝가리) 방산망을 강화하는 쪽으로 쓰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그럼에도 한화는 K9 공장 착공과 80% 현지화 제안을 통해 “루마니아를 유럽형 K-방산 전진기지로 만들겠다”는 장기 전략을 유지하고 있어, 후속 배치·개량 사업에서 다시 기회를 노릴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유럽이 뒤늦게 깨달은 ‘현지화 패키지’의 힘
헝가리·이탈리아·우크라이나 등에서 KF41 기반 현지생산 프로젝트가 이어지면서, 독일은 자국 중심 공급망을 키워 왔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탄약·차량·포병 수요가 폭증하는 상황에서, EU 역내 생산 능력만으로는 동부전선 전체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커졌다.
이 틈에서 “K9+레드백+현지 공장+기술이전” 풀 패키지를 들고 들어온 한국 방산 모델이, 단순 수출이 아니라 특정 국가를 ‘새로운 생산 거점’으로 키우는 구조라는 점이 유럽 일부에서 재평가되고 있다.

한국 방산이 유럽에서 더 나가려면
루마니아 사례는 유럽이 여전히 ‘바이 유러피언’ 기조와 독일·프랑스 중심 질서를 중시하면서도, 실제 전장 수요와 산업역량 사이의 간극 때문에 한국 같은 외부 파트너를 찾을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다만 한국 방산이 장기적으로 유럽 시장을 더 넓히려면, 단순 가격·성능 우위뿐 아니라, 루마니아처럼 “공장+기술이전+일자리+수출 허브”를 한 세트로 묶은 현지화 전략을 더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번의 ‘탈락’이 영원한 실패를 의미하진 않는다. 유럽이 한국 기술을 과소평가해 독일·프랑스만 바라보다가, 결국 탄약·포병·장갑차에서 한국산으로 공백을 메우고 있는 흐름이 이미 여러 나라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