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장갑차가 들어간 나라, 아이티
카리브해의 빈국 아이티는 지금 사실상 ‘도시 전쟁’ 상태에 가깝다. 무장 갱단이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도로·항만·연료 기지까지 장악하며 국가 기능이 마비되자, 국제사회는 케냐가 이끄는 다국적 치안 지원 임무와 함께 각국의 장비·인력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이 아이티 경찰에 궤도형 장갑차 3대를 기증하면서, 갱단과의 총격전 양상을 바꿀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아이티 경찰, 한국산 궤도 장갑차 3대 공식 인수
아이티 국가경찰(PNH)은 2월 5일(현지시간), 한국 정부로부터 궤도형 장갑차 3대와 연계 장비 세트를 공식 인수했다고 발표했다.
경찰청은 X(옛 트위터) 계정과 현지 언론을 통해 “대한민국이 제공한 이 장비는 테러 조직과 무장 갱단을 상대로 한 고위험 작전에 투입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PNH가 처음 보유하게 된 본격적인 궤도식 장갑 전력으로, 도심·공항·항만 등 핵심 시설 방어와 고립된 경찰 병력 구출 임무에 동원될 예정이다.

활주로까지 총격전… 공항이 전장이 된 이유
아이티의 치안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국제공항 공격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2024년 3월, 포르토프랭스의 투생 루베르튀르 국제공항은 갱단 수십 명이 외곽 장벽을 뚫고 난입해 경찰·군과 총격전을 벌이는 장면이 포착됐다.
당시 공항은 이미 일시 폐쇄돼 승객과 항공기 피해는 없었지만, 공항 직원들이 총탄을 피해 활주로와 건물 사이를 뛰며 숨는 장면, 활주로 위에서 장갑 트럭이 갱단을 향해 사격하는 장면이 미국·유럽 언론에 그대로 방송됐다. 최근까지도 교도소 집단 탈옥, 중앙은행·정부 시설 공격이 잇따르면서, 공항·항만 같은 전략 거점은 사실상 전시 수준의 방어가 필요한 상황이다.

‘바비큐’가 이끄는 G9, 사실상의 준(準)무장세력
아이티를 사실상 장악한 세력은 수도 일대 갱단 연합체 ‘G9’로, 두목 지미 셰리지에는 ‘바비큐’라는 별명으로 악명이 높다. 그는 2022년 아이티 석유 저장량의 약 70%가 보관된 바로 유류 터미널을 점거해 연료난을 극대화시키고, 물류 마비와 공공서비스 붕괴를 촉발했다.
최근에는 케냐가 주도하는 다국적 치안 지원 병력이 본격 전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경찰학교·공항·정부 건물을 노린 연쇄 공격을 배후 조종하는 인물로 지목된다. 시신을 도로변에 방치해 공포를 조성하는 등 ‘테러 수준’의 폭력으로 수도 시민들을 옥죄고 있다.

왜 장갑차 3대가 ‘체감 게임 체인저’가 될까
아이티 경찰은 경량 트럭과 소형 차량 위주로 작전해 왔기 때문에, 중기관총·소총으로 무장한 갱단과 정면 충돌할 때마다 피해가 컸다.
한국이 제공한 궤도 장갑차는 방탄 차체와 무장탑을 갖춘 전술 차량으로, 강력범죄 지역 진입·인질 구출·활주로·중앙은행 등 시설 방어 시 경찰들에게 사실상 ‘이동식 방패’ 역할을 해 줄 수 있다. 현지 언론은 “장갑차 덕분에 경찰이 노출된 상태로 도로에 서 있지 않아도 되고, 사격을 받으면서도 전진할 수 있게 됐다”며, 총격전 자체의 양상이 바뀔 가능성을 언급했다.

K200 계열로 보이는 ‘한국제 장갑차’의 의미
PNH와 현지 매체는 차량을 ‘전차(Chars blindés)’ 혹은 ‘궤도 장갑차’로 지칭하며, 한국제가 제공한 3대 모두 궤도형 전투장갑차 계열임을 전했다. 한국 군이 운용 중인 K200 계열 장갑차는 최대 10명 내외 병력을 보호하며 수송할 수 있고, 상부에 중기관총·대전차 화기 등을 탑재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알려져 있다.
아이티 경찰이 받은 차량도 이와 유사한 수준의 방호력과 탑승 공간을 갖춰, 다국적 치안 임무(MSS)와 연계한 중무장 경찰 투입용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이는 한국이 자국 실전 플랫폼을 개량·수출해 치안 임무에 투입한 첫 사례 가운데 하나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한국–아이티 치안 협력, 왜 지금인가
이번 장갑차 기증은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아이티 치안 회복을 돕는 국제 지원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유엔 안보리 결의 2699호에 따라 2024년부터 케냐가 이끄는 다국적 치안 지원 임무(MSS)가 아이티에 단계적으로 배치됐고, 미국은 해군 함정·항공 지원과 재정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은 군 병력 대신 장갑차와 장비·교육 지원을 통해 ‘안보 기여’에 나선 것으로, 향후 장갑차 운용 교육·정비 지원까지 이어질 경우 아이티 경찰의 장기 작전 능력을 실질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미국·도미니카까지 긴장한 아이티 치안 붕괴
아이티 사태는 이웃 국가와 미국에게도 직접적인 안보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존 커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아이티 상황이 급격히 악화하는 것을 매우 심각하게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미국 시민들에게 아이티 출국을 촉구하고 대사관 경보를 최고 수준으로 상향했다.
도미니카공화국은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어 국경 지역 군 병력을 증강하고, “우리 영토에 아이티 난민 수용소 설치는 허용하지 않겠다”고 못 박는 등 국경 관리 강화에 나선 상태다.

‘총격전이 줄어드는 도시’가 될 수 있을까
한국산 궤도 장갑차 3대만으로 아이티의 치안 위기가 단번에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동안 목숨을 걸고 픽업트럭 뒤에 몸을 숨기던 경찰들에게, 최소한 총탄을 버티며 전진할 수 있는 ‘강철 상자’가 생겼다는 점은 전장(전술) 심리에서 적지 않은 차이를 만든다.
현지 언론과 시민들은 “프랑스·캐나다와 달리 실질적인 장비를 보내 준 한국에 고맙다”는 반응을 보이며, 이 장갑차들이 공항·항만·정부시설을 둘러싼 총력전을 줄이고, 결국엔 총격전 없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데 기여하길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