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해의 독도, 격렬비열도의 정체
충남 태안 안흥항에서 서쪽으로 약 55km 떨어진 격렬비열도는 북·동·서격렬비도 3개 섬과 부속 도서로 이루어진 서해 최서단 군도다. 이 일대는 우리 영해 범위를 결정하는 23개 영해기점 도서 가운데 하나로, 중국 산둥반도와도 260여 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어족자원이 풍부하고 지정학적 가치가 높아 ‘서해의 독도’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국가 안보·해양 영토 수호의 상징으로 꼽힌다.

중국 자본의 ‘100억’ 접근 시도 논란
격렬비열도가 대중에게 알려진 계기 중 하나는 중국 자본의 거액 매입 시도 일화다. 서격렬비도 소유주 증언에 따르면, 한국어를 구사하는 조선족 추정 인물이 20억 원, 50억 원, 최대 100억 원 수준까지 부르며 매입 의사를 여러 차례 타진했다. 이 이야기가 방송과 온라인을 통해 확산되면서 “서해의 섬이 크림반도처럼 중국에 넘어갈 뻔했다”는 여론이 형성됐고, 정부에 보다 강한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실제 금액과 ‘100억 달러’ 과장 프레임
일부 자극적 온라인 콘텐츠에서는 이 일화를 각색해 “중국이 100억 달러를 들고 매입을 강요했다”는 식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보도와 인터뷰에 드러난 실제 수치는 ‘원화 기준 수십억 원대’ 제안으로, 개인 소유 섬을 상대로 한 비공식 접촉 수준이었다는 점이 확인된다. 그럼에도 서해 영해기점 도서에 중국 자본이 직접 접근하려 했다는 사실 자체가 큰 충격을 줬고, 격렬비열도의 전략적 민감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개인 소유 섬, 왜 국가 안보 리스크가 되나
격렬비열도 3개 섬 가운데 북격렬비도는 국유지지만, 동·서격렬비도는 오랫동안 개인 소유로 남아 있었다. 이 때문에 외국인이 국내 대리인을 내세워 토지를 사들일 경우, 법적·외교적 분쟁 소지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실제로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이 빈번한 서해 중부 해역 특성상, 섬의 소유 구조가 복잡할수록 향후 영유권 분쟁이나 해상 경비 공백이 발생할 위험이 크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정부의 대응, 토지거래 제한과 국유화 추진
논란 이후 정부는 격렬비열도 일대를 외국인 토지거래 허가구역으로 지정해, 중국 등 외국 자본이 직접 섬을 매입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통제했다. 해양수산부는 공시지가의 약 3배 수준을 제시하며 서격렬비도 국유화를 추진했지만, 소유주와의 가격 차이로 협상이 난항을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국토부·충남도·태안군은 국유화와 국가관리연안항 지정을 병행 추진하며, 장기적으로는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해양 전초기지로 격렬비열도를 활용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국가관리연안항 지정과 해군·해경 전초기지 구상
전문가들은 격렬비열도를 국가관리연안항으로 지정해, 해군·해경 함정의 중간 기항지이자 영해 수호 거점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해 왔다. 실제로 충남도와 해양수산부는 대형 함정이 접안할 수 있는 부두와 항만 시설을 구축하면, 중국 어선 불법 조업 단속과 영해 침범 감시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격렬비열도가 국가관리연안항으로 지정되면, 해군·해경·어업관리단이 상시 순찰·피난·급유를 수행할 수 있는 ‘서해 거점 항만’ 기능을 갖추게 된다.

서해 영해기점이자 해양 생태 보고
격렬비열도 주변 해역은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수역으로, 다양한 어종이 서식하는 황금 어장으로 평가된다. 동시에 우리 영해와 배타적경제수역(EEZ) 경계 설정에도 영향을 미치는 위치에 있어, 국회와 학계에서는 “독도에 버금가는 서해 해양주권 상징”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생태학자들은 이 일대의 조류·해양 생물 다양성을 보전하기 위해 무분별한 개발을 지양하면서, 감시·관측 기지와 친환경형 항만을 조화롭게 구축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중국의 시선과 서해 패권 경쟁의 축소판
중국 어선들은 이미 격렬비열도 인근에서 빈번하게 불법 조업을 시도하고, 한국 해경이 나포·압송하는 과정에서 장시간 경비 공백이 생긴다는 문제가 꾸준히 지적돼 왔다. 중국 자본의 매입 시도와 불법 어업이 겹치면서, 격렬비열도는 동중국해·서해 패권 경쟁의 축소판으로 불릴 정도다. 중국이 공식적으로 영유권을 주장한 적은 없지만, 자본과 어선을 통해 영향력을 넓히려 한다는 의심을 피하
기 어렵다는 게 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팔릴 뻔한 섬’이 남긴 경고
결과적으로 격렬비열도는 중국에 팔리지 않았고, 우리 섬 소유주가 “팔면 안 된다”는 판단으로 거액 제안을 거절한 사실이 알려지며 큰 공감을 얻었다. 다만 이 사례는 개별 민간 소유 섬이 곧바로 국가 안보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준 경고이기도 하다. ‘서해의 독도’로 불리는 격렬비열도가 진정한 의미의 안보 거점이 되기 위해선, 국유화·연안항 지정·상시 경비 체계 구축을 통해 국가 차원의 책임 있는 관리가 계속되어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