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겨냥해 “농축·재처리 허용 말라”
이번 서한의 발신자는 민주당 소속 에드 마키, 제프 머클리, 크리스 밴 홀런, 론 와이든 상원의원으로, 상원 내 ‘핵무기·군비통제 워킹그룹’ 소속 인사들이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한국에 민간용이라도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분리(재처리)를 허용하는 것은 “중대한 정책 전환”이며 “핵무기 핵심 기술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한국이 이런 능력을 갖추면 동북아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핵 확산과 군비 경쟁 위험을 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미 정상 팩트시트가 미국 비확산 정책 뒤집었다”
논란의 출발점은 2025년 10월 29일 한·미 정상회담 직후 백악관이 공개한 공동 팩트시트다.
이 문건에서 미국은 “양국 123 협정과 미국 법률에 부합하는 범위에서, 한국의 민간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로 이어지는 절차를 지지한다”고 처음으로 명시했다.
의원들은 이 표현이 “수십 년간 농축·재처리 기술 확산을 막아온 초당적 미국 비확산 정책을 사실상 뒤집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과거 핵개발 시도·민감 국가 지정까지”
서한은 한국의 과거 핵 개발 시도도 문제 삼았다.
의원들은 “한국은 1970년대 이후 핵무기에 관심을 보여 왔고, 유엔 조사를 받은 불법 핵 활동 전력이 있다”고 언급했다.
또 2024년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을 ‘민감 국가(sensitive country)’로 분류해, 핵 확산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은 국가군에 넣었다는 점과, 윤석열 전 대통령이 한때 ‘독자 핵 보유 가능성’을 시사한 발언도 함께 거론했다.

트럼프의 “한국도 핵 가져야” 발언까지 끄집어내
의원들은 트럼프 대통령 본인의 과거 발언도 문제 삼았다.
서한에서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과정에서 한국과 일본이 자체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고 제안한 전력이 있다”고 상기시키며, 이번 조치가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한국에 잠재적 핵무기 능력을 허용하는 것은 미국의 비확산 노력 전반을 약화시킨다”고 경고했다.

2015년 한·미 123협정, 어디까지 허용했나
현재 한·미 원자력 협력은 2015년 개정된 이른바 ‘123 협정’에 따라 이뤄진다.
이 협정은 한국이 미국산 핵연료나 기술을 활용해 우라늄 농축·재처리를 하려면 반드시 미국의 사전 동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당시 협정은 한국에 즉각적인 농축·재처리 권한을 주지 않는 대신, 한·미 공동연료주기연구와 고위급 위원회를 통해 장래에 일부 권한을 검토할 수 있는 ‘경로(pathway)’ 정도만 열어둔 상태였다.

“한국에 주는 신호, 사우디에도 영향을 미친다”
의원들은 한국에 대한 예외 허용이 중동 등 다른 지역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도 123 협정을 협상 중인데, 사우디 역시 우라늄 농축 의사를 보이며 핵무기 잠재력을 노린다는 의심을 받는다.
서한은 “한국에 농축·재처리를 허용하면, 사우디 등 다른 나라들도 같은 권리를 요구하며 핵무기용 물질 생산 능력을 확보하려 들 것”이라며 “이는 미국 비확산 정책의 신뢰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고 경고했다.

핵추진 잠수함(SSN) 계획도 도마 위에 올라
의원들은 또, 한·미 정상 팩트시트에 포함된 한국의 핵추진 공격잠수함(SSN) 건조 계획도 문제 삼았다.
팩트시트에는 미국이 한국의 SSN 보유 구상을 원칙적으로 지지한다는 취지가 담겨 있지만, 실제 건조 장소·핵연료 조달처·연료 유형 등 구체 내용은 명시되지 않았다.
의원들은 “현행 123 협정은 미국산 핵물질을 잠수함 추진을 포함한 어떠한 군사 목적에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한다”며, SSN 계획이 이 조항과 충돌하지 않는지 따져 물었다.

한국 정부, ‘연료주기 자립’ 논의 차질 불가피
한국 정부는 그동안 안보실 TF와 범정부 원자력 협의체를 통해 사용후핵연료 처리, 농축 기술 확보 등 ‘연료주기 자립’ 방안을 모색해 왔다.
특히 한국형 원전 수출 확대와 함께, 장기적으로는 연료 공급·재처리까지 자립해 “완전한 원전 패키지”를 갖추겠다는 전략을 세워왔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압박과 더불어, 미 상원에서까지 공개적인 ‘한국 핵 금지’ 서한이 나온 만큼, 관련 협의는 상당한 정치적 저항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 잠재적 핵무기 능력 허용 말라”
의원들은 서한 말미에서 “한국에 잠재적 핵무기 능력을 허용하는 것은 한반도 안정은 물론, 미국의 글로벌 비확산 정책 전반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재차 못 박았다.
이어 “행정부는 한국을 포함한 어떤 국가와의 수정된 핵 협력 협정에서도 가장 강력한 비확산 장치를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관련 정책을 명확히 바로잡을 것을 촉구했다.
결국 이 서한은 “한국은 동맹이지만, 핵연료주기 기술만큼은 예외가 될 수 없다”는 미 의회의 경계심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