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네시아용 F‑15는 더 이상 진행 안 한다”
싱가포르 에어쇼에서 보잉 디펜스 사업개발·전략 담당 부사장 번드 피터스는 “인도네시아와의 F‑15 파트너십은 더 이상 우리에게 진행 중인 캠페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는 2023년 인도네시아 국방부와 맺었던 최대 24대 F‑15EX(F‑15IDN) 도입 양해각서(MoU)를 사실상 종료한다는 의미로, 미 국무부의 판매 승인까지 받았던 프로젝트가 수년 만에 백지화된 셈이다.
보잉은 구체적 이유는 밝히지 않았지만, “예산 편성·계약 확정이 지연되는 상황에서 더 이상 실질적인 진전이 없다고 판단했다”는 게 방산 업계의 중론이다.

8조 원 규모로 홍보됐던 F‑15EX 계획, 예산 단계도 못 갔다
인도네시아는 2023년 프라보워 수비안토 국방장관의 방미 당시, F‑15EX 24대 도입 의향을 공식 발표하며 “공군의 핵심 전력 강화”를 선언했다.
당시 계약 규모는 약 80억 달러(한화 10조 원 안팎)로 추산됐고, 미 국무부는 최대 36대 판매 가능성을 사전에 승인하는 등 분위기는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국방부는 2024~2025년 예산에 F‑15EX 도입 비용을 반영하지 못했고, 자국 국방부도 “예산 편성 단계에 진입하지 못한 계획”이라며 한발 물러선 바 있다.

프랑스 라팔·튀르키예 KAAN까지… ‘다변화 전략’의 부메랑
인도네시아는 같은 시기 프랑스 라팔 42대 도입 계약, 미국 F‑15EX, 튀르키예 5세대 전투기 KAAN 공동개발 참여 의향 등 여러 사업을 동시에 추진해 왔다.
하지만 경제 성장 둔화와 재정 제약 속에서 대형 전투기 사업을 3~4개씩 병행하는 건 애초부터 무리였다는 지적이 많았다.
결국 실질 계약·선금 집행이 이뤄진 라팔 외에는 대부분이 “정치적 선언 수준”에 머물면서, 보잉 F‑15EX처럼 중도 이탈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KF‑21 공동개발, 1조6천억 약속에서 6천억으로 축소
한국과의 KF‑21(보라매) 사업에서 인도네시아는 애초 개발비의 20%인 1조6천억 원을 부담하기로 했지만, 실제 납부액은 3백억 원대에 그쳤다.
재정난을 이유로 분담금 감액을 요구하는 동안, 인도네시아 기술진이 KF‑21 관련 데이터를 담은 USB를 무단 반출하려다 한국 수사에 적발되는 사건까지 발생해 신뢰도에 상처를 냈다.
결국 한국 방위사업추진위원회는 2024년 8월 인도네시아 분담금을 6천억 원으로 줄이는 대신, 기술 이전 규모도 그 범위 안에서만 이뤄지도록 조정했다.

한국이 메운 구멍, 줄어든 인도네시아의 ‘몫’
분담금 감액으로 줄어든 1조 원은 한국 정부와 KAI가 나눠 부담하기로 했고, 개발 총사업비도 절감 노력을 통해 7조6천억 원 수준으로 재조정됐다.
대신 인도네시아가 요구했던 완제기·부품 생산, 기술 이전 범위는 축소돼, “공동개발 파트너”라기보다는 제한된 수준의 참여국으로 위상이 낮아졌다.
장기적으로 KF‑21이 수출 단계에 들어가면, 인도네시아 몫의 산업·기술 이익도 애초 구상보다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결과적으로 KF‑21도, F‑15EX도 ‘반쪽짜리’가 된 인도네시아 선택
인도네시아는 KF‑21 분담금 불이행과 감액 요구로 한국 측과의 신뢰를 스스로 깎아먹은 뒤, 미국 F‑15EX로 방향을 틀었지만 예산·절차 문제로 이 계약도 무산됐다.
라팔·KAAN·F‑15EX·KF‑21을 모두 언급하며 전력을 “다변화”하려 했지만, 실제로는 어느 쪽에서도 확실한 포지션을 확보하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렀다는 비판이 나온다.
반면 한국은 인도네시아 변수를 줄이고 자체 부담을 늘리면서도, 2026년 KF‑21 체계개발 완료·양산 전환 목표를 유지하고 있어 두 나라의 선택이 점점 더 대비되는 모양새다.

“돈 아끼려다 신뢰 잃었다”는 교훈
방산 전문가들은 인도네시아 사례를 두고 “단기 재정 부담을 줄이려다 장기 파트너십과 신뢰를 잃은 전형적인 실패 패턴”이라고 지적한다.
韓·美·佛·튀르키예 등 여러 파트너와 동시에 줄다리기를 벌이기보다, 분담금·기술 이전 조건을 현실적으로 조정해도 일관된 이행 의지를 보여줬다면 결과가 달랐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상태에선 KF‑21에서도, F‑15EX에서도 ‘핵심 파트너’ 지위를 놓친 채, 이미 계약이 진행 중인 라팔에 의존하는 쪽으로 공군 현대화 방향이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우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