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의 “석유 봉쇄” 선언과 첫 나포
트럼프 행정부는 2025년 말 마두로 정권을 외국 테러 조직으로 지정하고, 베네수엘라발 제재 유조선에 대해 “완전한 봉쇄”를 명령했다.
이 발표 직전과 직후, 미 해군·해안경비대는 카리브해 인근에서 제재 위반이 의심되는 탱커들을 추적·승선 검색하기 시작했다.
첫 사례는 12월 초 ‘스키퍼(Skipper)’로 알려진 유조선으로,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싣고 카리브해를 빠져나가던 중 미 함정에 의해 나포됐다.

“그림자 선단” 겨냥… 180만 배럴 실은 탱커들 줄줄이 걸리다
베네수엘라와 이란, 러시아 등 제재 국가들은 흔히 ‘그림자 선단(shadow fleet)’이라 불리는 선박 네트워크를 이용해 원유를 실어나른다.
이들 선박은 파나마·리베리아 등 제3국 기국을 빌리고, 선박명·깃발·보험사를 수시로 바꾸며, AIS(위치발신기)를 끄는 방식으로 단속을 피해 왔다.
그러나 미국은 위성·상업용 선박추적 데이터, 보험·항만 입출항 기록을 결합해, 중국행으로 추정되는 베네수엘라 중질유 180만 배럴 안팎을 실은 탱커들을 특정하고 차례로 나포·압류하고 있다.

벨라1(현 마리네라), 러시아 국기 달고도 결국 붙잡혀
대표적인 사례가 ‘벨라1(Bella 1)’로, 이 선박은 2024년 베네수엘라산·이란산 제재 원유 운송 혐의로 미 재무부 제재 명단에 올랐다.
미 해안경비대가 2025년 말 카리브해에서 승선 검사를 시도하자 벨라1은 도주했고, 이후 러시아 국적으로 재등록·선명 변경(마리네라)까지 하며 대서양을 북상했다.
2026년 1월, 미 유럽사령부와 해안경비대는 북대서양 상에서 이 선박을 포착해, 미국 법원 영장을 근거로 강제 승선·나포에 성공했고, 이는 최근 미국이 러시아 국적 유조선을 직접 압류한 첫 사례로 기록됐다.

중국행 베네수엘라 원유, “돈줄 차단” 직격탄
미·EU 제재로 공식 시장이 막힌 베네수엘라 원유의 최대 고객은 그동안 중국이었다.
중국 국영·민간 무역회사들은 홍콩·싱가포르 페이퍼컴퍼니와 그림자 선단을 활용해, 우회 형태로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할인 가격에 들여왔다는 분석이 많았다.
미국은 이 네트워크를 겨냥해 중국 본토·홍콩에 등록된 석유 트레이딩사와 관련 탱커들을 제재 명단에 올리고, 실제 공해상에서 선박을 나포해 원유를 압류함으로써, 마두로 정권의 외화 수입을 정면에서 차단하고 있다.

열흘 새 두 척, “봉쇄가 말이 아니라는 신호”
올해 1월 초 공개된 작전 내용을 보면, 미군과 해안경비대는 북대서양과 카리브해에서 거의 같은 시기 두 척의 베네수엘라 연계 탱커를 제압했다.
하나는 러시아 국기를 단 마리네라(전 벨라1), 다른 하나는 베네수엘라산 원유 약 180만~200만 배럴을 싣고 카리브해를 지나던 ‘소피아(M/T Sophia)’였다.
국토안보부와 남부사령부는 이를 “몇 시간 간격으로 진행된, 안전하고 효과적인 승선작전”이라고 평가하며, 앞으로도 제재 대상 선박에 대한 나포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카리브해가 새 ‘해상 전선’… 미·중 외교 충돌 불씨
전문가들은 이 일련의 봉쇄·나포가 단순히 베네수엘라를 겨냥한 조치에 그치지 않고, 중국과의 외교·경제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고 본다.
중국은 공식적으로는 미국 제재를 준수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제재 회피 네트워크를 통해 베네수엘라·이란산 원유를 계속 들여왔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이런 선박이 미국·동맹 해군에 의해 공해상에서 반복적으로 나포될 경우, 중국이 “자국 기업과 에너지 안보에 대한 부당 간섭”이라고 반발하며 군사·외교적 대응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베네수엘라 경제·정치에 미치는 파장
베네수엘라는 이미 하이퍼인플레이션과 생산설비 붕괴로 정유 인프라가 크게 약화된 상태에서, 사실상 중국·러시아·이란에 대한 원유 수출로만 외화를 벌어 왔다.
그나마 남은 수출분마저 그림자 선단이 맡고 있던 상황에서, 미군이 실제로 선박을 잡아 원유를 압류하기 시작한 것은 마두로 정권의 재정 기반을 정면으로 흔드는 조치다.
일부 분석가는 “트럼프식 봉쇄는 제재를 우회하던 비공식 통로까지 차단해, 내부 정치 균열이나 정권 교체 압박을 노리는 고강도 전략”이라고 평가한다.

“대리전의 한 축”이라는 시각도
중동·동유럽·동남아 등에서 이미 중국·러시아가 각종 분쟁에서 미국과 반대편에 서 있는 가운데, 베네수엘라 역시 중국 자본과 석유 거래에 깊이 의존하고 있다.
미국이 카리브해에서 중국행 베네수엘라 원유까지 봉쇄하는 장면은, 에너지·해상 물류 영역에서의 미·중·러 간 ‘대리전’ 한 축으로 보는 시각을 낳는다.
이 때문에 미국의 유조선 나포 작전은 단순 제재 집행이 아니라, 글로벌 차원의 세력경쟁에서 상대 진영 자금줄을 겨냥한 ‘경제전·해상전’의 결합으로 해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