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은 곁에서 ‘주머니 손’ 넣던 남자, 왜 사라졌나
김정은 앞에서 유일하게 주머니에 손을 넣은 모습이 공식 사진에 포착됐던 인물은 노동당 조직비서 조용원이다.
2019년 태풍 피해를 입은 황해남도 시찰 사진에서, 그는 김정은 바로 옆에서 양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대화를 나누는 듯한 자세로 서 있었다.
북한처럼 선전 사진 구도까지 엄격히 통제되는 체제에서 이런 장면이 공개됐다는 사실 자체가, 조용원이 당시 얼마나 각별한 측근으로 신뢰받았는지를 보여 준다는 평가가 나왔다.

당 조직비서·정치국 상무위원까지 오른 ‘숨은 2인자’
조용원은 본래 노동당 조직지도부(현 조직지도부·조직비서국) 제1부부장으로, 우리식으로 치면 차관~장관급에 해당하는 실무 핵심이었다.
그러나 2020년 이후 노동당 조직비서,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잇따라 승진하며, 김정은을 포함해 5명뿐인 최고 의사결정 기구 상무위원회 일원으로 올라섰다.
김여정·최룡해 등 기존 실세들이 부침을 겪는 동안에도 그는 해임·강등 없이 권력 핵심을 지켜, 국내외에서 ‘북한의 2인자’, ‘실세 중의 실세’로 불렸다.

2월 이후 두 달 넘게 자취 감춘 ‘권력 그림자’
조용원의 마지막 공식 등장은 2월 28일 개성시 개풍구역 지방공업공장·종합봉사소 착공식 보도였다.
이후 김일성 생일(4월 15일)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각종 현지지도·행사 보도에서 정치국 상무위원 일부가 언급됐지만, 조용원 이름과 얼굴은 등장하지 않았다.
김정은 현지 지도를 거의 ‘그림자처럼’ 수행하던 인물이 두 달 이상 연속해서 매체에서 사라진 건 매우 이례적이라는 점에서, 한국 정부와 정보당국도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숙청인가, 근신·혁명화인가… 당국이 보는 가능성들
통일부와 국가정보원은 조용원의 공개 활동 중단을 두고 “고령 은퇴·질병 가능성 외에도, 혁명화 교육(근신)이나 징계성 인사 조치일 수 있다”고 신중한 입장을 내놨다.
올해 1월 김정은이 지방 간부 비위를 “특대형 범죄”로 규정하며 강력한 기강 다잡기에 나선 직후라는 점에서, 조직비서를 맡은 조용원이 간부 관리 책임을 지고 내부 징계를 받았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다만 최근 김정은 체제는 최측근을 공개 처형하기보다는 일정 기간 ‘혁명화’ 후 복귀시키는 패턴을 보이는 만큼, 단정은 어렵다는 게 정보당국의 공통된 평가다.

시골 출신 ‘이과 엘리트’, 서서히 떠오른 실무형 최측근
조용원은 김일성종합대학 물리학부 출신으로, 북한 고위층에선 드문 이공계 배경을 가진 인물이다.
자강도 농촌 출신의 비교적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당 보조지도원급 말단 실무자로 시작해 차근차근 승진한 전형적인 ‘실무·조직통’ 경력을 밟아 왔다.
2016년 제7차 당대회에서 김정은이 회의장 뒤편에 있던 그를 앞으로 불러 세우는 장면이 포착되며, ‘숨은 핵심 측근’으로 처음 존재감이 부각됐다.

진흙 묻은 양말로 따라다니던 ‘그림자 수행’
조용원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자주 언급되는 것은, 2023년 강원도 안변군 농장 시찰이었다.
당시 그는 장화를 챙기지 못한 듯 양말 차림으로 논바닥을 따라다니며, 진흙이 잔뜩 묻은 상태에서도 수첩을 들고 김정은 발언을 빠짐없이 받아 적는 모습이 공개됐다.
전문가들은 이런 장면이 “지도자의 의중을 누구보다 잘 읽고, 실무적으로도 김정은 기대를 충족시킨 인물”이라는 메시지를 대내외에 과시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숙청설’을 누른 우표 한 장, 처벌은 있어도 복귀 여지는 유지?
2025년 4월 북한 국가우표국이 예고한 통보에 따르면, 지역공업 20×10 정책 1년 성과를 기념하는 우표(110원권)에 조용원이 김정은을 수행하는 장면이 새겨질 예정인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에서 우표·기념영상·도서 등 선전물은 숙청 시 가장 먼저 편집·삭제되는 대상이라는 점에서, 조용원이 아예 제거된 것은 아니라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 등은 “현영철 처형 이후 최고지도부 직계 측근이 공개 처형된 사례는 확인되지 않으며, 김덕훈 등 사례처럼 징계 후 전면 복권되는 패턴이 최근 김정은식 인사 스타일”이라고 분석한다.

노동당 창건 80주년·9차 당대회 앞두고 맡았을 ‘특별 임무’ 가능성
일각에선 조용원이 단순 근신이 아니라, 10월 노동당 창건 80주년, 내년 초 9차 당대회를 준비하는 별도 태스크포스(TF)를 맡았을 가능성에 주목한다.
임을출 교수 등은 7차·8차 당대회 준비 과정에서도 핵심 조직비서·실무진이 현장을 비우고 보고서·인사·조직 정비에 전념한 전례가 있다고 지적한다.
김정은 ‘15년 구상’의 중간 결산 성격을 띠는 9차 당대회가 다가오는 만큼, 조용원이 물밑에서 정치·군사·경제 전반의 성과 정리와 인사 재편 초안을 담당하고 있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