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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대표 사절단이 "서울 수준 보고 비아냥댔지만" 오히려 북한을 당황시킨 '이 외교관'

aubeyou 2026. 2. 3. 21:16

북한 대표단의 비아냥을 단번에 눌러버린 한마디

 

1980년대 초, 남북적십자회담 수석대표를 지냈던 이범석 전 외무장관은 서울을 방문한 북한 대표단에게 “자동차를 옮겨오느라 힘들었겠다”는 비아냥을 들었다.
북측은 서울 시내 도로를 달리는 차량들이 ‘원래 있던 게 아니라 보여주기용으로 동원된 것’이라는 식으로 수준을 깎아내린 셈이었다.
이에 이 전 장관은 곧바로 “빌딩을 옮겨오는 건 더 힘들었다”고 받아쳐, 단숨에 상대 기선을 제압했고 현장 공기를 완전히 뒤집었다.

슐츠 장관이 폭소한 ‘빌딩’ 일화

 

이 일화는 1983년 조지 슐츠 미 국무장관이 취임 후 처음 방한했을 때, 본격 회담에 앞서 이범석 장관이 직접 들려준 이야기였다.
슐츠는 “정말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 거듭 확인할 만큼 흥미를 보였고, 배석한 한국 대표단이 “사실이다”라고 맞장구를 치자 미국 대표단 사이에서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외교 현장에서 상대의 조롱을 유머와 자신감으로 되받아친 사례로, 슐츠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며 두 사람의 친분을 단숨에 좁히는 계기가 됐다.

“부부도 사랑한다 말한다”는 이범석의 워싱턴 연설

 

이듬해인 1984년 4월, 이범석 장관이 워싱턴을 방문해 미측 인사 150여 명 앞에서 연설을 하면서 또 한 번 재치를 발휘했다.
그는 “전두환 대통령께 워싱턴 방문을 보고하니, ‘슐츠 장관이 방한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무슨 일로 가느냐’고 물으셨다”고 운을 뗐다.
이어 “미국 사람들은 부부 사이에도 아침저녁으로 사랑한다고 말하니, 슐츠 장관이 한국을 찾은 지 오래되지 않았더라도 답례로 찾아가 우의를 다져야 한다고 건의해 허락을 받았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북한을 상대하던 외교관의 감각, 미·한 관계도 녹였다

 

이범석의 이런 화법은, 남북 회담장에서 북한의 심리전을 상대하며 단련된 감각이 미·한 관계에서도 그대로 발휘된 사례로 평가된다.
상대를 낮춰 보려는 말을 정면 충돌 대신 여유 있는 농담으로 되받아, 체제 자신감을 과시하면서도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전형적인 ‘외교적 위트’였다.
당시 외교가에선 “북한 대표를 말로 제압하던 스타일이 슐츠 장관에게도 깊은 인상을 줘, 이후 미·한 간 신뢰 형성에 도움이 됐다”는 회고가 나왔다.

‘거구 외무장관’ 최광수, 체구·외교력 모두 슐츠에 견줬다

 

이범석의 뒤를 이은 최광수 전 외무장관은 키 182cm의 장신에 탄탄한 체격으로, 서방 외교관 사이에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는 외모를 갖고 있었다.
1986년부터 1988년까지 전두환 정부 마지막 해와 노태우 정부 첫 해 외교를 책임지며, 자연스럽게 조지 슐츠와도 자주 마주했다.
외무부 안팎에서는 “체구만 놓고 보면 슐츠와 나란히 서도 뒤지지 않는다”는 농담이 돌 정도로, 상징적인 비교 대상이 됐다.

재외공관장 회의 뒤 청와대 만찬에서 터진 ‘슐츠 드립’

 

1988년 서울에서 열린 재외공관장 회의 뒤 청와대 만찬 자리에서, 사회를 맡은 최호중 주사우디 대사가 마지막 순서로 최광수 장관에게 노래를 시켰다.
그는 “최 장관은 슐츠 미 국무장관에 비해 체구도 손색없지만, 체구보다 뛰어난 것이 외교 수완이고, 외교 수완보다 더 뛰어난 것이 노래 솜씨”라며 장관을 치켜세웠다.
좌중은 폭소에 휩싸였고, 우연의 일치처럼 그해 12월 최호중 대사는 최광수의 뒤를 이은 외무장관으로 발탁됐다.

북한의 비아냥을 되받아 친 ‘서울 수준’이 남긴 의미

 

북한 대표단의 “자동차 옮겨오느라 힘들었겠다”는 비아냥은, 당시 서울의 발전과 체제 자신감을 깎아내리려는 전형적인 심리전이었다.
하지만 이범석의 “빌딩을 옮기는 건 더 힘들다”는 응수는, 물적 성취에 대한 자신감과 함께 “우리는 보여주기용 도시가 아니라 실제로 이렇게 산다”는 메시지를 간명하게 전달했다.
이 한마디에 북한 대표단이 더 말을 잇지 못했다는 후문은, 말 한 줄이 외교·심리 싸움에서 얼마나 큰 효과를 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