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무원, ILO에 한국 정부 제소 준비
전국군무원연대는 최근 민주노총 법률원과 위임 계약을 맺고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CFA) 제소 절차에 착수했다. 이 단체는 한국 정부가 ILO 제87호(결사의 자유)·제98호(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협약을 비준해놓고도, 군무원의 노동조합 설립과 단체교섭권을 사실상 봉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제소서에는 군무원이 민간 신분임에도 군인과 비슷한 통제·제약을 받으면서, 정작 단체행동은 물론이고 제대로 된 노조조차 허용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ILO 협약 비준 후 첫 ‘군무원’ 제소 의미
한국은 1991년 ILO 가입 이후 2021년 핵심협약 3개(29·87·98호)를 비준했고, 공무원·교사 노조를 둘러싼 쟁점마다 ILO 권고를 받아온 바 있다. 그러나 군무원이 주체가 돼 ILO에 직접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가 내리는 결론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비준국에 대해서는 “협약 위반” 판단 자체가 외교·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미 공무원 노조 관련 사건에서 ILO가 한국 정부에 여러 차례 “노동권 제한이 과도하다”는 취지의 권고를 내린 전례가 있어, 군무원 문제도 국제적 감시 대상에 오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군무원 정예화’와 전투훈련 강요 논란
갈등의 배경에는 병력 감소를 보완하려는 국방부의 ‘군무원 정예화’ 정책이 자리 잡고 있다. 군무원연대는 사격·유격·화생방 훈련 등 각종 전투 훈련 참여가 갈수록 확대되고, 야간·주말 당직·경계 근무까지 맡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주장한다.
2020년 군무원 당직 근무 도입, 2022년 일부 부대에서 군무원 총기 지급 시도, 2023년에는 특전사 체력훈련 수준의 피트니스 요구가 이어진 것 등이 대표적 사례로 거론된다. 군무원 측은 “정작 전시 임무와 법적 신분은 군인이 아닌데, 평시 훈련과 업무는 군인처럼 요구받는 모순”이라고 비판한다.

“군형법·출타제한은 군인처럼, 연금·관사는 민간처럼”
군무원 사회에서 가장 큰 불만은 ‘책임은 군인처럼, 보상은 민간보다 못하다’는 점이다. 비위가 발생하면 군형법 적용 대상이 될 수 있고, 비상 상황·훈련 기간에는 군인과 마찬가지로 출타 제한을 받는다.
실제 일선 부대에서는 당직·경계·긴급 상황 대응에 군무원을 포함시키는 관행이 넓게 퍼져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면 군인연금, 관사 배정, 각종 복지 포인트 등은 군인을 중심으로 설계돼 군무원은 대부분 혜택 밖에 있다. 전국군무원연대는 “힘든 일은 군무원에게 돌리면서도 성과상여·복지·진급에서는 군인과 차별하는 ‘군 안의 비정규직’처럼 취급한다”고 토로한다.

인구 절벽·정예화 기조 속 “대체 인력” 역할
국방부가 이런 요구를 거두기 쉽지 않은 이유는 인구 절벽 때문이다. 병역 자원 감소로 병사 숫자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행정·정비·군수·시설 분야를 군무원으로 메우는 흐름이 이미 정착됐다.
최근 국방백서와 인력 구조 개편 논의에서도, “전투부대는 간부·병사 중심으로 슬림화하고, 지원·기술 분야는 군무원·민간인력으로 대체한다”는 방향이 반복적으로 제시돼 왔다. 문제는 이런 구조 변화가 현장에서 “군무원에게 더 많은 군사화·훈련·당직을 요구하는 형태”로 나타나면서, 당사자들의 반발을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군무원 지원자·재직자, 숫자로 드러나는 위기
불만은 숫자로도 나타난다.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군무원 채용시험 지원자는 2022년 약 6만 7,000명, 평균 경쟁률 9.3대 1 수준이었으나, 최근에는 약 2만 3,000명까지 줄어들며 5.5대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탈도 거세다. 자발적 퇴직(의원면직)으로 군을 떠나는 군무원이 최근 매년 1,300명 이상 발생하는 추세로, 신규 충원과의 균형이 무너질 조짐까지 보인다. 공무원 시험·민간 기업 일자리와 비교해 ‘군무원’ 직군의 매력이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법·제도상 애매한 위치, 노조 권리도 ‘반쪽짜리’
법적으로 군무원은 국가공무원법상 공무원에 포함되지만, 군 조직 안에서 근무하는 특성 때문에 근로기준법·노조법 적용 범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공무원 노조는 일정 범위 내에서 허용돼 있지만, 군사기밀·지휘체계와 직결된 업무 종사자는 노조 가입이 제한되거나 단체행동권이 봉쇄되어 있다.
군무원 측은 “우리는 병사 지휘권도 없고, 군사작전 결재권도 없는 민간인 신분인데, 군사기밀·지휘체계를 이유로 노조 설립 자체를 막는 것은 과도한 확대 해석”이라고 본다. ILO 역시 과거 한국 공무원·교사 노조 사례에서 “정치적 중립성 요구가 노동권 전반을 침해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혀온 바 있어, 군무원 문제에서도 비슷한 논리가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국방부의 논리와 앞으로의 쟁점
국방부는 “군무원은 군 조직의 일부로서 군사 대비태세 유지에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며, 일정 수준의 군사훈련·당직·비상근무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군 특수성을 이유로 일반 공무원·민간 노동자와 동일한 노조 활동·단체행동을 허용하기 어렵다는 논리를 펴왔다. 향후 ILO 제소가 본격화되면, 쟁점은 △군무원의 ‘민간성’과 ‘군사성’의 경계 △어디까지가 정당한 군 특수성인지 △노조 권리가 군 기강·작전에 미치는 영향이 실제로 어느 정도인지에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정예화”와 “권리 회복” 사이에서
병력 감소로 군 구조를 손봐야 하는 것은 분명한 현실이다. 그러나 그 해법이 민간 신분의 군무원들에게 군인에 준하는 부담을 지우는 방향만으로 가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군대 안에 있지만 군인은 아니다’라는 군무원들의 자기 규정은, 단지 처우개선 요구를 넘어 한국 군 조직이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정예화를 추진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ILO 문을 두드린 이번 움직임이, 군 특수성과 노동권 사이의 새로운 균형점을 찾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