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에서 K-방산으로, 알제리가 흔들린 이유
러시아제 무기로 북아프리카 최강급 전력을 갖춰 온 알제리가 서울 ADEX 2025에 최고위급 군사대표단을 보내 한국 방산업체와 연쇄 협상을 진행하면서, “푸틴의 대표 고객”으로 불리던 나라가 왜 K-방산을 주목하는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단순 시찰이 아니라 구체적 도입과 협력 모델을 논의하는 자리였다는 점에서, 러시아 중심이던 알제리 무기 체계에 구조적 변화가 시작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러시아 무기의 대표 고객, 알제리의 군사력
알제리는 인구 4,500만 명대, 상비군 10만 명 이상, 예비전력·준군사조직을 포함하면 40만 명 규모로 평가되는 북아프리카의 대표 군사 강국이다.
냉전 이후 줄곧 러시아(소련 포함)를 주요 무기 공급원으로 삼아 T-90S 전차, Su-30MKA 전투기, S-300·Pantsir 방공체계, 킬로급 잠수함 등을 대량 도입해 왔다. 최근에는 Su-57 수출형 도입 논의까지 알려지며, 러시아 첨단 전력의 ‘전시장’ 역할을 한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만큼 러시아제 장비 비중이 공군·육군·방공 전력에서 절대적이다.

러시아 무기 의존에 드리운 그늘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러시아 방산 생산 능력이 자국 수요에 우선 배정되면서, 알제리를 포함한 전통 고객들에게 인도 지연과 물량 축소가 발생하고 있다.
과거 MiG-29SMT 도입 과정에서 품질 문제로 기체를 반송했던 전례에 더해, 최근에는 일부 방공·기갑 시스템의 실전 성능 논란과 유지보수 부담이 겹쳤다. 러시아에 대한 정치·군사적 유대는 여전히 강하지만, “향후 20~30년을 러시아 플랫폼 하나에만 걸 수는 없다”는 현실적 고민이 알제리 내부에서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ADEX 2025, 알제리 최고위급이 서울로 온 이유
2025년 10월 열린 서울 ADEX 2025에서 알제리군 최고 지휘관인 사이드 샤느그리하 참모총장이 개막식과 전시 현장을 직접 찾았다. 알제리 국방부는 공식 발표에서 그가 한국의 주요 방산기업 부스를 찾아 다층 방공체계, 유도무기, 전술차량, 항공기를 둘러보고 양자 회담을 이어갔다고 밝혔다. 특히 일정표에 “장비 도입 가능성과 공동 개발·훈련 분야 협력”이 명시돼 있어, 이번 방문이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중·장기 방산 파트너십 모색의 출발점이라는 점을 드러냈다.

알제리가 주목한 K-방산 포인트
알제리 대표단이 집중적으로 검토한 분야는 크게 방공, 장거리 화력, 기동 장비, 항공 전력이다. 한국형 중거리 지대공미사일 계열과 유사한 통합 방공체계, 천무 다연장로켓과 전술탄, 고기동 장갑차·전술트럭, 그리고 FA-50·KF-21로 이어지는 전투기·경공격기 패키지가 대표적이다. 알제리 측은 일부 체계에 대해 “완제품 수입”뿐 아니라, 부품은 한국에서 생산하고 최종 조립·정비는 알제리에서 수행하는 현지 생산 모델까지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단순 구매가 아닌 방산산업 공동 육성을 염두에 둔 접근이다.

러시아 무기와 비교했을 때, 한국이 가진 장점
알제리가 한국 신형 다연장·방공·전술차량에 관심을 보이는 배경에는 러시아 장비의 한계가 자리한다. 부라티노 계열 열압력 다연장은 강력한 화력에도 불구하고 짧은 사거리·유도 기능 부재로 현대전 환경에선 운용 제약이 크고, Su-57·Su-35 등 일부 전투기는 개발·인도 지연으로 전력화 일정이 계속 늦어지고 있다. 반면 한국산 무기는 이미 폴란드·노르웨이·이집트 등에서 실전 배치되며 납기·성능·운용 편의성을 입증했고, 서방제보다 가격·정치적 부담이 적다는 점도 알제리 입장에선 매력 포인트다.

자주국방과 현지 생산, 알제리가 노리는 그림
알제리는 과거 러시아와 T-90S 현지 조립 경험을 쌓았듯, 외국산 무기를 단순히 사 오는 것보다 자국 생산·유지보수 역량을 키우는 데 관심이 많다. 한국 업체들이 이집트·폴란드 등과 진행 중인 K9 자주포, K2 전차의 현지 생산·기술이전 모델은 알제리가 원하는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한국 입장에서도 설계·핵심 부품은 국내에서 만들고, 조립·정비·일부 부품 생산을 알제리에 두는 방식이면, 안정적인 장기 파트너를 확보하면서 아프리카 시장에 생산 거점을 두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모로코·이집트에 이어, 북아프리카 ‘3각 축’ 가능성
이미 이집트는 K9 자주포를 현지 생산하는 계약을 맺고 있고, 모로코는 K2 ‘흑표’ 전차 최대 400대 도입을 검토하며 한국과 실무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알제리까지 본격적인 K-방산 고객으로 합류하면, 북아프리카 3대 군사 강국이 모두 한국산 중·대형 지상·방공 전력을 도입하거나 도입을 고려하는 구도가 된다. 이는 전통적으로 러시아·프랑스·미국이 주도해 온 아프리카 무기 시장에서 한국이 독자 축으로 부상하는 흐름을 의미한다.

“러시아를 버렸다”기보다는, 선택지가 넓어졌다
지금 단계에서 알제리가 러시아 무기를 전부 버리고 한국산으로 갈아탄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미 도입한 Su-30, T-90S, S-300 계열은 상당 기간 주력으로 운용될 가능성이 크고, 러시아와의 정치·안보 관계도 여전히 중요하다.
다만 신규 전력·차세대 사업에서 러시아 비중을 줄이고, 한국·서방·다른 공급국과의 균형을 맞추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이는 러시아 방산에 구조적 타격이 될 수 있다. 한국으로서는 이 공백을 메우는 ‘대체재’가 아니라, 앞으로 수십 년간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자리 잡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K-방산, “러시아 이후 시장”의 시험대에 서다
알제리의 선택은 단순한 무기 계약을 넘어 K-방산의 위상을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수 있다. 폴란드·노르웨이·이집트·모로코에 이어 알제리까지 주요 고객군으로 확보한다면, 한국은 유럽·중동·아프리카를 연결하는 방산 벨트를 사실상 완성하게 된다.
러시아 무기로 무장했던 나라들이 하나둘씩 한국을 찾는 현상은, “제때·제대로·함께 만들 수 있는” 무기 공급자를 원하는 시대 변화의 결과이기도 하다. 알제리가 실제 대규모 도입과 현지 협력으로 이어질 경우, K-방산은 러시아와 서방 사이를 잇는 제3의 축으로 자리 잡는 중요한 전환점을 맞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