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두로 체포, 그리고 ‘비상사태 90일’
미군 특수부대가 카라카스 인근을 기습해 마두로 대통령을 생포해 미국으로 압송한 직후, 베네수엘라 대법원은 부통령이던 델시 로드리게스에게 임시 대통령 권한을 부여했다. 로드리게스 임시 정부는 곧바로 90일간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이 조치는 군과 정보기관, 경찰에 “미국의 공격을 지지하거나 환영하는 행위”를 한 사람을 즉시 수색·체포할 수 있는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했다. 명목상으로는 “치안 확보”지만, 실질적으로는 체제에 비판적인 시민과 언론을 겨냥한 도구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폰 열어봐라”…휴대폰 키워드 검열까지
마두로가 미국으로 압송된 뒤, 수도 카라카스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는 검문소와 불심검문이 눈에 띄게 늘었다. 베네수엘라 보안군과 정보요원, 그리고 친정부 민병대 ‘콜렉티보’는 도심 도로·버스 안에서 시민들의 휴대전화를 빼앗아 메신저 앱을 열게 한 뒤, ‘침공(Invasiòn)’, ‘마두로(Maduro)’, ‘트럼프(Trump)’ 등의 단어를 검색해 대화를 뒤졌다고 인권단체들은 증언한다.
현지 인권단체 ‘휴먼 칼레이도스코프’ 대표는 “채팅창에서 마두로 체포를 환영하는 글이나 미국 군사 작전을 긍정적으로 언급한 내용이 발견되면, 그 자리에서 곧바로 연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 서부 술리아주의 노점상은 “독재자가 이제 감옥에서 춤을 추겠다”고 거리에서 외쳤다가 이틀 뒤 경찰에게 끌려갔고, 가족이 그의 석방을 위해 1,000달러와 과일·채소를 뇌물로 줘야 했다는 사례도 전해졌다.

“정치깡패” 콜렉티보, 여전히 거리 장악
마두로 정권 시절 반정부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해 악명을 떨쳤던 친정부 무장 민병대 ‘콜렉티보’는 정권 교체 후에도 해산되지 않았다. 두건을 쓰고 소총·산탄총으로 무장한 채, 도로에서 차량을 세우고 트렁크와 짐을 수색하며 ‘반동분자’로 의심되는 시민을 당국에 넘기거나 현장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이 SNS를 통해 공유되고 있다.
미국 대사관은 자국민에게 “콜렉티보가 검문소를 설치하고 차량을 수색해 미국 시민권 여부나 미국 지지 흔적을 찾고 있다는 보고가 있다”며 즉시 출국을 권고하기도 했다. 마두로는 감옥에 있지만, 그가 구축한 감시·탄압 기구와 민병대는 여전히 거리에서 시민들의 일상에 공포를 심어주고 있는 셈이다.

겉으로는 반미, 뒤로는 트럼프와 ‘밀착 통화’
로드리게스 임시 대통령은 공개적으로는 “미국의 군사작전은 국제법을 위반한 잔혹 행위”라며 마두로의 석방을 요구하고, “카라카스를 지배하는 외국 세력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과는 물밑에서 긴밀히 협력 중이라는 보도가 잇따른다. 연합뉴스TV에 따르면 로드리게스는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해 석유 분야 협력과 치안 안정 방안을 논의했으며, 미국이 설계한 베네수엘라산 원유 수출 관리 체계에도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미국 의회조사국(CRS)은 최근 보고서에서 “마두로 축출 이후 베네수엘라가 빠르게 안정돼 석유 생산이 늘어날 것이라는 트럼프 행정부의 장밋빛 전망과 달리, 정치·치안 상황은 여전히 불안정하고 인권 침해 사례도 계속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의 우선순위는 ‘민주화’가 아니라 ‘원유’
미군 공습과 체포 작전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석유’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는 “우리는 원래 가져왔어야 할 석유를 되찾았다”며,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회사 PDVSA의 원유 판매 대금을 미 재무부 관리 계좌로 이전해 제3자가 손대지 못하도록 할 계획을 공식화했다. 엑손모빌·셰브런 등 미국 주요 석유회사 CEO들을 백악관으로 불러 “어떤 석유 회사들이 베네수엘라 사업에 참여할 수 있을지 우리가 직접 결정할 것”이라고 말한 장면도 포착됐다.
트럼프는 1970년대 석유 국유화와 2007년 우고 차베스 정권의 미국 기업 자산 몰수로 미국이 “역사상 최대 규모의 재산 절도”를 당했다고 주장하며, 이번 작전이 “빼앗긴 석유 권리를 되찾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인권·민주주의 문제에 대해선 “정치범 석방은 아직 거기까지 가지 않았다. 지금 우선순위는 석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며, 석유 이권이 훨씬 앞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야권과 거리 두는 워싱턴, 마차도는 ‘애매한 파트너’
베네수엘라 야권의 상징적 인물인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는 오랜 세월 민주화 운동과 반독재 투쟁으로 202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그와 일정 거리를 두는 태도를 보여 왔다. 비록 최근 트럼프가 “어떤 방식으로든 마차도를 베네수엘라 문제에 참여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하며 톤을 조금 누그러뜨렸지만, 여전히 마차도를 차기 지도자로 공식 지지하지는 않고 있다.
트럼프는 기자회견에서 “마차도가 베네수엘라 국민의 지지와 존경을 받고 있는지 확신하지 않는다”며, “그가 지도자가 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이는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마두로 정권의 정통성을 부인해 온 야권의 기대와는 거리가 먼 발언으로, 베네수엘라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미국이 진정한 민주주의 회복보다는 석유 산업 안정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석유를 위한 전쟁”이라는 냉혹한 진단
전문가들은 이번 베네수엘라 개입의 가장 강력한 동기가 ‘석유’라는 데 대체로 의견을 같이한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 원유 매장량을 보유한 국가이지만, 마두로 정권의 부패·관리 부실로 생산량이 급감해 왔다. 트럼프 행정부는 마두로 축출 일주일 만에 원유 판매 대금을 미국 계좌로 통제하는 구조를 구축하고, 석유 생산에 필요한 첨단 장비·원료 공급을 재개하겠다고 발표했다.
동시에 베네수엘라 원유가 쿠바 등 제3국으로 흘러들어가는 통로를 차단해, 남미에서 중국·러시아의 영향력을 줄이겠다는 전략도 숨겨져 있다는 분석이 있다. 그 결과 베네수엘라 국민에게 돌아가는 것은 “민주주의 회복”이 아니라, 미국과 임시정부·구체제 인사들이 석유 이권을 재배분하는 사이에 계속되는 물가 폭등·범죄·치안 불안이라는 냉혹한 현실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독재자는 갔지만, 공포는 남았다”
마두로의 축출은 분명 역사적 사건이지만, 베네수엘라 거리의 분위기는 축제와 거리가 멀다. 보안군과 콜렉티보가 휴대폰을 뒤지고, 농담 한 마디에도 체포될 수 있는 상황에서 시민들은 입을 굳게 다문 채 생존에 집중하고 있다.
미 의회조사국은 “마두로 후퇴 이후에도 옛 체제의 인물들이 그대로 권력 주변에 남아 있고, 임시정부는 미국과의 석유 협력에 우선순위를 둔 채 체계적인 민주 개혁을 미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독재자는 감옥에 있지만, 공포 정치의 도구와 석유를 둘러싼 외세의 계산은 여전히 베네수엘라를 옥죄고 있다. 지금 이 나라를 향한 질문은 단순히 “마두로 이후 누가 집권하느냐”가 아니라, “석유가 아닌 국민이 중심이 되는 정치가 가능하냐”는 보다 근본적인 물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