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군이 문 두드린 의회 군 옴부즈맨
이번 스캔들은 26공수연대에 복무 중인 여군들이 연방의회 군 옴부즈맨(군 인권 담당관)에게 피해 사실을 신고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들은 “부대 내 성추행·성적 모욕과 여성 혐오 발언이 일상적으로 벌어졌고, 상급자들이 이를 묵인하거나 농담처럼 넘겼다”고 증언했다.
이 신고를 계기로 군 내부 감찰과 연방 검찰 수사가 동시에 시작됐고, 독일 공영방송 ARD와 파이낸셜타임스(FT)가 관련 내용을 잇따라 보도하면서 여론의 공분이 폭발했다.

“나치 경례가 막사 인사였다”
피해 여군과 내부 문건에 따르면, 일부 병사들 사이에서는 히틀러식 나치 경례가 막사 안에서 사실상의 인사 방식으로 쓰였다. 손바닥을 아래로 두고 팔을 뻗는 나치 경례는 독일 형법상 엄격히 금지돼 있으며, 공공장소에서 사용 시 최고 3년 징역형까지 선고될 수 있다.
그럼에도 해당 연대에서는 나치식 구호·반유대적 농담과 함께 극우 성향 슬로건이 회식 자리·훈련장에서 공공연히 사용됐고, 일부는 노골적인 반유대주의·극우 파벌을 형성해 왔다는 내부 보고가 드러났다. 독일 국방부는 2024년 한 해 동안 연방군 전체에서 나치 경례 등 극우 의심 사건이 280건 발생해 97명이 강제 전역했다고 밝힌 바 있어, 군 내부 극우 문제의 ‘빙산의 일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성추행·폭력 의식·마약…“밤마다 이어진 비정상적 의식”
성적 비위의 양상도 충격적이다. 여군들은 “훈련 뒤 회식 자리에서 상급자가 허벅지를 만지거나 신체 접촉을 시도하는 일이 빈번했고, 이를 거부하면 인사·보직에서 불이익을 받는 분위기였다”고 호소했다. 일부 병사는 여군을 둘러앉혀 성적 농담과 모욕적인 발언을 쏟아냈고, 항의하면 ‘부대 문화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낙인이 찍혔다고 한다.
독일 언론이 입수한 내부 보고서에는 소속 병사들이 마약과 알코올에 취한 상태에서 폭력적 ‘통과 의례’와 집단 폭행을 벌이고, 이를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돌려보는 등 비정상적인 의식을 수년간 이어온 정황도 담겼다. 방어·해외 파병을 맡는 최정예 부대에서 이 같은 문화가 오랜 기간 방치됐다는 사실 자체가 독일 사회에 큰 충격을 던지고 있다.

55명 조사, 9명 해고…민간 검찰로 넘어간 16건
크리스티안 프로이딩 육군참모총장(육군 Inspector)은 연방의회 국방위원회 보고 뒤 기자회견에서 “26공수연대 관련 비위 의혹으로 현재 55명에 대해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 가운데 9명은 이미 강제 전역(해고) 조치됐고, 19명은 추가 해고 절차가 진행 중이다.
더 심각한 16건의 사건은 민간 검찰에 이첩되어 형사 수사를 받고 있으며, 성폭행·마약류 관리법 위반·극우 선전 혐의가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부대 지휘관도 직위 해제됐고, 국방부는 해당 연대를 대상으로 한 ‘공수군 행동계획’을 마련해 지휘 체계와 교육 과정을 전면 재점검하겠다고 밝혔다.

국방장관 “충격적…지휘부가 못 본 척했다”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은 “츠바이브뤼켄(연대 주둔지)에서 드러난 극우주의·성적 학대·마약 사용 관련 보고는 매우 충격적”이라며 “연방군 핵심 가치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태”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런 비위가 즉시 인지되지 못했고, 결정적으로 단호하게 대응되지 못했다는 점이 더욱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지휘부 책임을 질타했다.
피스토리우스 장관은 “우리는 군 안에서 극우주의나 성적 학대, 마약 남용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에 관대한 지휘관은 연방군에서 설 자리가 없다”고 강조하며, 신고 문화를 조성하고 피해자 보호를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병력 확대 앞둔 독일군, ‘최악의 타이밍’
이번 스캔들은 독일이 러시아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병력 확대를 선언한 민감한 시점에 터졌다. 독일 정부는 나토 방위 분담 압박과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대응해, 연방군 병력을 2031년까지 20만 명 이상으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이달부터 18세 청년 전체에 복무 등록 안내를 발송하며 ‘준(準)징병제’ 형태의 모병 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독일군 최정예”로 홍보해온 26공수연대에서 성추행·극우·마약 스캔들이 터지면서, 야당과 시민사회는 “청년들에게 군이 안전한 일터라는 신뢰를 어떻게 설득하겠느냐”며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녹색당은 “이런 사건이 모병 의욕을 꺾고 나토 방위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정부를 비판했다.

반복되는 군 내 극우 스캔들
독일군의 극우 문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특수부대 KSK(특전사령부)는 2017~2021년 사이 우익 극단주의 관련 의심 사례가 50건 이상 적발돼 2020년 일부 부대가 해체됐다. 2024년에는 연방군 전역에서 나치 경례·극우 상징물 사용 등 의심 사례 280건이 보고돼 97명이 강제 전역 처분을 받았다.
정치권에서도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 소속 의원이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나치식 경례를 했다는 혐의로 기소되는 등, 독일 사회 전반에서 극우주의가 재부상하고 있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는다. 이번 26공수연대 사건은, 극우 이념이 군·경찰 같은 국가 폭력기관과 결합할 때 어떤 위험을 낳는지 보여주는 또 하나의 경고라고 할 수 있다.

독일군에 남겨진 숙제: ‘정예’의 의미를 다시 묻다
26공수연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서부전선 방어를 위해 창설된 공수부대의 전통을 잇는 부대로, 아프가니스탄·말리 등 해외 파병에도 참여한 최정예 전투 부대다. 그러나 내부에서 드러난 것은 높은 전투력 이전에, 최소한의 인권 감수성과 민주적 가치조차 지켜지지 않은 조직 문화였다.
이번 사태는 독일군이 과거 나치 군대와 선을 긋기 위해 수십 년간 쌓아온 ‘시민군(市民軍)’ 이미지에도 깊은 상처를 남겼다. 독일 정부가 진정으로 군을 재건하고 병력을 확대하려면, 단순히 장비와 예산을 늘리는 것을 넘어 “어떤 가치 위에 세워진 군대인가”라는 질문에 먼저 답해야 한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여군들의 용기 있는 폭로가 드러낸 이번 사건은, 독일군이 스스로를 다시 점검할 마지막 경고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