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스페이스 창업자에서 ‘반(反)자본주의 환경운동가’로
더글라스 톰킨스는 1960년대 샌프란시스코에서 노스페이스를 창업한 뒤, 전 부인과 함께 패션 브랜드 에스프리를 키워 글로벌 의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그는 회사를 떠나며 경영권과 지분을 정리했고, 1990년 ‘딥 에콜로지 재단(Foundation for Deep Ecology)’ 등을 세우며 사실상 환경 운동가로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꿨다. BBC 등은 그를 “소비주의로 부를 쌓았지만, 말년에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며 자연 보호에 올인한 인물”로 소개한다.

파타고니아 야생지 사들여 ‘민간 국립공원’ 만들다
톰킨스는 1990년대 초부터 칠레 남부 푸말린(Pumalín) 지역의 원시 온대우림을 시작으로, 파타고니아 곳곳의 사유지를 하나씩 매입했다. 이렇게 모은 토지만 칠레와 아르헨티나 전역에서 200만 에이커 이상으로 추산되며, 푸말린 공원 하나만 해도 현재 약 99만 4,000에이커(요세미티 국립공원보다 넓은 규모)를 보호하고 있다. 그는 이 지역에 대규모 리조트나 스키장을 짓는 대신, 도로·캠프장·트레일 같은 저밀도 인프라만 조성해 ‘사유지 형태의 국립공원’을 사실상 운영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국가 기부’로 귀결
이 토지들은 이후 ‘톰킨스 컨서베이션(Tompkins Conservation)’ 이름으로 순차적으로 각국 정부에 기부됐다. 2017년 톰킨스의 부인 크리스틴 톰킨스와 칠레 대통령은 약 100만 에이커의 민간 토지 기부와 900만 에이커 규모의 국유지 추가 보호에 합의해, 총 1,000만 에이커 이상을 새로운·확장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는 협정을 체결했다. 이 프로젝트는 단일 민간 단체가 한 국가에 제공한 ‘세계 최대 규모 토지 기부’ 사례로 기록되었고, 국유지까지 포함한 보호 면적은 요세미티·옐로스톤 국립공원을 합친 면적의 세 배에 이른다는 평가가 나온다.

자연 보호가 지역 경제를 살리는 구조로
초기에는 “외국인이 국토를 잠식한다”는 의심과 정치적 논란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국립공원 지정 이후 관광·생태 복원 효과가 가시화되자 지역 여론은 상당 부분 우호적으로 바뀌었다. 푸말린 국립공원과 파타고니아 국립공원, 아르헨티나 이베라(Iberá) 국립공원 등은 생태관광 허브로 자리 잡으며, 야생동물 복원과 동시에 로컬 가이드·숙박·교통 등 지역 일자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톰킨스 재단은 “국립공원은 본질적으로 가장 민주적인 공공 자산이며,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지역에서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제도”라고 강조해 왔다.

“지구에 내는 월세”라는 철학
언론 보도와 유족 증언에 따르면, 톰킨스는 생전에 자신이 벌어들인 자산 약 2억 달러 중 상당액을 토지 매입·공원 인프라·생태 복원에 투입했다. 그는 주변에 “내가 이 행성에 살기 위해 내는 월세(paying my rent to live on this planet)”라고 표현하며, 남긴 재산 상당 부분을 유산이 아닌 공원 조성에 쓰도록 유언을 남겼다.
2015년 카야킹 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에도, 부인과 재단은 칠레·아르헨티나 정부와 협력을 이어가며 새로운 국립공원 지정과 토지 기부를 계속하고 있다. 아웃도어 브랜드로 번 돈을 다시 자연에 돌려주는 이 구조는, “지구에 투자해 백만장자가 아니라 ‘행성의 부채를 갚은 사람’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는 것이 환경단체와 학계의 공통된 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