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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도 실패한 구출" 적진 한가운데에서 390명을 구조해버린 한국의 '이 군대'

aubeyou 2026. 1. 1. 11:19

카불 함락과 한국의 결단

2021년 8월 미군 철수 발표 이후 아프간 정부군이 급속 붕괴하면서, 탈레반은 8월 15일 수도 카불을 전격 점령했다. 민간항공은 사실상 마비됐고, 카불 하미드카르자이 국제공항 주변은 탈출을 시도하는 군중과 탈레반 경계병, 미·나토군이 뒤엉킨 ‘무정부 상태에 가까운 전쟁터’가 됐다. 한국 정부는 여기서 단순 교민 철수가 아니라, 수년간 한국 대사관·KOICA·국군 아크부대 등과 함께 일해 온 아프간 협력자와 그 가족까지 포함한 구출 작전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C-130J·KC-330, 한국 수송기가 직접 들어갔다

외교부는 처음엔 타국 전세기 활용을 검토했으나, 카불 공항 상황이 급변하자 자체 군용 수송기를 투입하는 쪽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국방부는 공군 C-130J 수송기 2대와 KC-330 공중급유·수송기 1대, 총 3대를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로 전개시켜 카불–이슬라마바드–인천으로 이어지는 공수 루트를 개척했다. 카불 상공은 로켓·박격포 위협 경보가 계속 울리는 가운데였고, 활주로 운영·관제도 불안정해 수송기 조종사들은 야간에 급강하·급상승 기동을 반복하며 착륙·이륙을 감행했다는 증언이 전해진다.

공군 CCT, 적대적 공항을 ‘임시 관제소’로 바꾸다

작전의 핵심에는 공군 전투통제사(CCT, Combat Control Team) 요원들이 있었다. CCT는 원래 적지에 먼저 침투해, 관제 시설이 없는 지역에서 임시 활주로·착륙지점을 설정하고, 아군 항공기의 진입·이착륙·화력 지원을 유도하는 특수전·항공통제 복합 부대로, “가장 먼저 들어가서 마지막에 나오는 부대”라는 모토를 갖고 있다. 미라클 작전에서도 CCT 요원들은 카불 공항 내 안전 구역을 설정하고, 탈레반·군중 사이를 뚫고 들어온 한국 협력자들이 탑승 지점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동선·집결지·탑승 순서를 현장에서 조정했다. 사실상 붕괴된 공항 관제 기능의 일부를 대신 수행한 셈이었다.

390명, 단 한 명도 잃지 않은 ‘기적의 숫자’

한국 정부 설명과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작전은 8월 24~27일 사이에 단계적으로 진행됐다. 첫날에는 명단에 오른 인원이 26명뿐이라 실패 우려가 제기됐지만, 이후 버스 6대를 동원해 365명을 공항으로 추가 수송하는 데 성공해, 최종적으로 391명이 카불에서 이슬라마바드로 공수됐다. 이 과정에서 신원 재확인 결과 명단에 없는 1명이 확인돼 현지에서 내렸고, 미국 측에 인계되면서 한국행 최종 인원은 390명으로 확정됐다. 8월 26~27일, KC-330과 C-130J에 나눠 탄 이들 390명은 파키스탄을 거쳐 인천공항에 도착했고, 전원 무사 상태로 충북 진천 법무연수원에 마련된 임시 생활시설로 이동했다.

다른 나라들과 달랐던 점

미라클 작전은 규모 면에서는 미국·영국 등이 수행한 수만 명 단위 대피작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누구를 끝까지 데리고 나왔는가’라는 관점에서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여러 서방국이 자국민 중심 또는 일부 조력자만 선별대피하는 가운데, 한국은 대사관·병원·직업훈련센터·아크부대 파견부대 등과 함께 일한 현지 직원과 가족을 포괄해, 사실상 “한국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을 끝까지 책임졌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미국·유럽 언론·싱크탱크 분석에서는 이를 “중견국 한국이 보여준 책임 있는 난민·조력자 정책”으로 평가하며, 이후 한국 내 난민 논쟁과도 연결해 해석했다.

군사·외교·정보가 결합된 ‘중견국형 구출 작전’ 모델

미라클 작전에는 약 60~70명의 군·외교·의료 인력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방부·외교부·국정원·법무부가 합동 태스크포스를 꾸려, 현지 망명 신청 대상 선정, 탈레반과의 간접 소통, 미군·나토군과의 공항 사용 조율, 수송기 안전 확보 등을 동시에 해냈다. 귀국 후 한국 정부는 이들에게 난민이 아닌 ‘특별공로자’ 지위를 부여하고, 장기 체류와 정착 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법적·사회적 보호 장치를 마련했다. 여러 외교·안보 분석은 카불 공수 작전을 “한국이 더 이상 단순 경제 대국에 머무르지 않고, 위험 지역에서 자국민과 협력자를 보호할 능력과 의지를 갖춘 책임 있는 중견국으로 올라섰음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