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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보다 "한국이 10년은 빠를 수 있었지만" 나라가 막았다는 '이 기술'

aubeyou 2025. 12. 20. 18:21

1993년, 도심에서 ‘무인차’가 달렸다

 

1990년대 초 한민홍 교수 연구팀은 카메라·레이더·차량 제어 컴퓨터를 탑재한 시험차량으로 국내 도심 도로에서 자율주행을 시도했다. 차선 인식·전방 차량 추종·신호 인지 등, 오늘날 ADAS의 기초가 되는 기능을 자체 개발해 실제 교통 환경에서 시험했고, 1993년에는 제한된 구간이지만 운전자 개입 없이 스스로 가속·제동·조향을 수행하는 실증에 성공했다. 당시만 해도 GPS 보정·고성능 칩·정밀지도 같은 인프라가 전무하다시피 했던 점을 감안하면, 센서·알고리즘·제어 기술만으로 이뤄낸 성과라는 점에서 해외 학계에서도 높은 관심을 끌었다.

1995년 서울–부산 400km 부분 자율주행

 

연구팀은 1995년 이 기술을 고속도로 장거리 주행으로 확장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약 400km 구간을 설정하고, 차선 유지와 차량 간 거리 유지, 제한된 환경에서의 자동 추월 등을 시스템이 담당하는 ‘부분·조건부 자율주행’ 상태로 테스트했다. 위험 구간이나 시스템이 처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탑승 연구원이 직접 개입했지만, 당시로서는 전례 없는 장거리 자율 주행 실험이었다. 이 실적은 해외 학회와 기술지에 소개되며 “한국도 독일·미국과 함께 초기 자율주행 연구 그룹에 들어갔다”는 평가를 받았다.

“쓸모 없다” 판단한 정부, 끊어진 초기 투자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당시 정책·산업 환경에서 승용차는 수출·제조업 중심이었고, 자율주행은 상용화까지 너무 먼 ‘미래 기술’로 여겨졌다. 관련 부처와 평가위원회는 “도로·법·수요 측면에서 현실성이 떨어지고, 당장 산업화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이유로 후속 과제 지원을 중단했다. 민간 완성차 업체들도 상용화 시점을 가늠하기 어렵다며 본격 투자에 나서지 않았고, 연구팀은 소규모 기초 연구만 이어가다가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았다. 미국·유럽에서는 같은 시기 DARPA·EU 프레임워크 프로그램 등을 통해 장기적 자율주행 연구 자금이 꾸준히 투입된 것과 대조적이었다.

2000년대 이후 뒤늦게 다시 달리기 시작한 한국

 

테슬라가 2000년대 중반 이후 전기차·오토파일럿으로 자율주행 상용화를 밀어붙이는 사이, 한국은 2000년대 후반부터 다시 대학·출연연·현대자동차를 중심으로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현재는 고속도로 레벨2·2+ 수준 주행보조, 제한된 구간 레벨3 시범 서비스, 로보택시·셔틀 파일럿 운영 등으로 세계 중상위권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맏형’으로 출발했던 1990년대와 달리, 지금은 미국·중국·유럽과의 격차를 좁혀가는 추격자의 위치에 서 있는 것이 현실이다.

놓친 10년이 의미하는 것

 

전문가들이 “테슬라보다 10년은 앞서 있을 수 있었다”고 말하는 이유는 기술 그 자체보다 ‘시간’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 성과를 발판으로 2000년대에도 꾸준히 투자와 실증이 이어졌다면, 센서·AI·지도·통신 인프라가 성숙한 오늘 시점에는 완성차·모빌리티 서비스·반도체·소프트웨어까지 묶인 자율주행 생태계의 주도권을 한국이 쥐고 있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당시 정부의 “필요 없다”는 판단은, 하나의 연구 과제가 아니라 10년치 경험과 레퍼런스를 포기한 선택이었다.

지금이라도 바꿔야 할 ‘국가 R&D 보는 눈’

 

한민홍 교수팀 사례는 “당장은 돈이 안 돼 보여도, 한 세대 뒤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기술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질문을 남겼다. 지금도 인공지능, 양자컴퓨팅, 우주, 차세대 에너지, 바이오 등 여러 분야에서 비슷한 고민이 반복되고 있다. 자율주행에서 놓친 10년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단기 성과 중심의 평가·예산 구조를 넘어서 장기 비전·위험 감수형 투자를 견딜 수 있는 제도와 정치적 합의가 필요하다. 과거 “미래가 없다”고 잘라 말했던 기술들이, 몇십 년 뒤 한국 산업과 안보의 핵심이 되어 있는 사례는 이미 너무 많이 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