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칙은 ‘경고방송→경고사격→조준사격’인데
비무장지대(DMZ) 내에서 북한군이 MDL에 접근·침범했을 때 우리 군의 공식 대응 절차는 명확하다. 먼저 확성기로 경고방송을 실시하고, 계속 남하하면 미리 지정한 표적을 향해 K6 중기관총 등으로 경고사격을 한 뒤, 일정 거리 안까지 내려오면 조준사격까지 가능하도록 단계별 규칙이 마련돼 있다. 거리 기준(예: 100m·50m)을 정해 둔 뒤 그 선을 넘으면 곧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기계적 대응’이 지금까지의 기본 원칙이었다. 이 체계는 MDL 침범을 곧바로 주권 침해 가능성이 있는 도발로 보고, 신속한 차단을 통해 기습·기만을 원천 봉쇄하기 위한 것이다.

국방부, “사격 전 상황평가부터” 이례적 지시
그런데 국방부 고위 관계자가 10월 말 이후 합참 지휘통제실을 최소 두 차례 찾아 “전방 작업 중 북한군이 MDL을 넘었을 때 경고사격을 할 경우, 남북 간 충돌로 번지지 않도록 상황평가를 면밀히 하라”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시 합참 작전통제실에 국방부 인사가 직접 내려가 작전 수행 방식에 이런 주문을 한 것 자체가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말 그대로 절차를 바꾸라는 공식 명령은 아니지만, “사격을 결정하기 전에 다시 한 번 상황을 재검토하라”는 메시지가 전방으로 내려간 셈이다.

최전방에서는 ‘사실상 사격 자제’로 인식
현장에서는 이 지침을 두고 “누가 들어도 경고사격을 줄이라는 뜻”이라는 반응이 나왔다고 한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 역시 내부 회의에서 “MDL 침범 대응 시 기존처럼 기계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상황에 따라 판단하라”고 주문해, 기존 매뉴얼대로 곧바로 경고사격에 들어가기보다 ‘말로 최대한 돌려보라’는 신호로 읽혔다는 증언이 나온다. 실제로 이런 방침이 내려온 뒤에는 북한군이 MDL을 넘는 상황에서 전방부대가 경고사격 여부를 결정하기 전 상황평가에 상당한 시간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원칙적 대응을 중시하는 합참 안에서는 “명시적 자제 명령이 없더라도, 나중에 문제가 되면 최전방 부대가 책임을 떠안을 걸 알기 때문에 보다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늘어나는 MDL 침범, 느려진 사격 결정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한 이후, 북한군의 MDL 인근 작업과 침범 사례는 실제로 늘고 있다. 합참에 따르면 북한군 작업 인력 다수는 삽·곡괭이 등 비무장 상태지만, 작업 지역을 사전 탐지·엄호하는 일부 인원은 개인화기로 무장한 채 MDL 근처를 오가고 있다. 올해 4월 강원 고성 일대에서는 소총으로 무장한 병력 20여 명이 MDL을 넘어서다가 우리 군 경고사격으로 되돌아간 사례도 있었다. 국회 국방위 자료에 따르면 북한군은 11월 1~23일 사이에만 10차례 MDL을 넘어왔는데, 이 가운데 6차례는 경고사격까지 실시했고 4차례는 경고방송만으로 퇴각시켰다. 11월 이전 6건의 침범 때 매번 ‘경고방송–경고사격’이 이어졌던 것과 비교하면, 사격까지 가는 비율이 눈에 띄게 줄어든 셈이다.

“우발충돌 막자” vs “아군만 손발 묶이는 것”
국방부는 이런 기조 변화가 무조건적인 유화가 아니라 우발충돌을 피하기 위한 관리 차원이라는 입장이다. 실제로 북한은 올해 8월 우리군의 DMZ 내 경고사격에 대해 총참모부 명의 담화를 내고 “엄중한 도발”이라고 규정하며, 유사시 군사적 대응을 시사한 바 있다. 남북 간 군사회담을 제안했지만 평양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고, 작은 오인·오판이 확전으로 번질 위험이 있는 만큼 ‘한 발 늦더라도 최대한 말로 돌려보라’는 취지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군 안팎에서는 “북한은 MDL 작업과 침범을 통해 우리 대응 패턴을 시험하고 있는데, 이 와중에 우리 쪽 대응 수위만 낮추면 오히려 기습·도발 유인을 키울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내년 봄, 다시 시험대에 오를 MDL
북한군은 동계훈련 때문에 최근 전방 공사·작업을 사실상 중단한 상태지만, 예년 패턴대로라면 내년 3월쯤 전방 작업 재개와 함께 MDL 인근 출현이 다시 잦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때까지 지금의 ‘상황평가 강화’ 기조가 유지될 경우, 최전방 지휘관들은 우발충돌 방지와 주권 침해 차단 사이에서 더 어려운 판단을 강요받게 된다. 경고사격을 줄이면 북한의 반발 명분은 줄어들 수 있지만, 우리의 경계선은 그만큼 뒤로 밀릴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번 방침은 단순히 사격 한두 발을 아끼는 문제가 아니라, 남북 군사적 긴장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그리고 어떤 선까지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신호를 어디에 그을 것인지에 대한 선택의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