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전용 휴양지에서 시작된 ‘브루스 비치’

1912년 찰스·윌라 브루스 부부는 당시 캘리포니아 해변 리조트 대부분이 흑인 출입을 금지하던 상황에서, 맨해튼비치 해안 땅을 매입해 흑인도 이용할 수 있는 휴양 시설 ‘브루스 비치’를 조성했다. 이곳은 바다 수영, 피크닉, 숙박이 가능한 드문 흑인 전용 해변으로 자리 잡았고, 로스앤젤레스 흑인 중산층 가족들이 주말을 보내는 중요한 공간이 됐다. 그러나 백인 주민 일부와 백인 우월주의 단체 KKK는 흑인 이용객을 노골적으로 괴롭히고 접근을 방해하며 브루스 부부를 압박했다.
1924년, ‘강제 수용’이라는 이름의 토지 강탈

백인 주민들의 반발이 커지자 맨해튼비치 시의회는 브루스 부부와 주변 흑인 소유 부지를 대상으로 ‘공원 조성을 위한 강제 수용’을 추진했다. 겉으로는 공공 목적을 내세웠지만, 실질적으로는 흑인 휴양지를 없애려는 의도가 짙은 조치였다. 1924년경 시는 강제 수용 절차를 완료해 브루스 가문 소유의 땅을 몰수했고, 브루스 부부와 인근 흑인 토지 소유자들은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떠나야 했다. 이후 이 부지는 시와 LA 카운티 소유로 넘어가 구조요원(라이프가드) 훈련 시설과 주차장 등으로 쓰이며, 원래의 흑인 휴양지 역사는 오랫동안 가려졌다.
100년 만에 시작된 반환 운동

시간이 흐르며 브루스 비치의 존재는 지역사 연구자와 시민단체, 후손들의 노력으로 다시 조명되기 시작했다. 약 2년 전부터 LA 카운티와 캘리포니아 주를 상대로 “브루스 가문의 후손에게 토지를 반환해야 한다”는 운동이 본격화됐다. 이 과정에서 당시 강제 수용이 인종차별적 동기와 결합된 사실상 ‘표적 몰수’였다는 점, 브루스 부부가 받은 보상이 터무니없이 낮았던 점 등이 재조명됐다. 여론이 커지자 LA 카운티 당국은 법률 검토와 의회 표결을 거쳐, 해당 해변 부지를 브루스 가문 상속인들에게 넘겨주는 방안을 수용하기로 했다.
카운티 소유에서 후손에게…임대 형식 유지

최종 결정에 따라 LA 카운티는 맨해튼비치 내 관련 부지의 소유권을 브루스 가문의 상속자들에게 돌려주는 절차를 마무리했다. 현재 부지에는 여전히 구조대원 훈련 시설과 주차장이 있어, 카운티는 기능 유지를 위해 토지를 되팔지 않고 일정 기간 임대하는 방식을 택했다. 브루스 가문은 소유권을 갖고, LA 카운티는 연간 약 41만 3,000달러 수준의 임대료를 지불하는 구조다. 이렇게 해서 과거 조상에게서 강제로 빼앗긴 땅이, 약 100년 만에 법적·경제적 의미에서 후손들의 손에 다시 돌아오게 됐다.
후손들이 말하는 ‘돈보다 더 큰 의미’

브루스 부부의 증손자 앤서니 브루스는 미국 언론 인터뷰에서, 이번 반환이 가족에게 의미하는 바가 단순 금액을 넘어선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가족에게 브루스 비치는 원래 훌륭한 사업이자 삶의 터전이었지만, 인종 증오와 편견 때문에 비극으로 바뀌었다”며, 당시 가족이 겪은 테러와 배제를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브루스 가문 측 대변인 역시 “잃어버린 돈을 완전히 되찾은 것은 아니지만, 역사적 부당함을 인정하고 바로잡으려는 첫걸음”이라며 이번 반환을 ‘정의를 향한 한 걸음’으로 평가했다.
토지 반환이 던지는 미국 사회의 과제

브루스 비치 사례는 미국 내에서 인종차별로 인한 재산 강탈과 그 후속 조치를 둘러싼 논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 가족의 휴양지가 사라진 사건이자, 동시에 흑인 커뮤니티가 축적할 수 있었던 자산·기회가 제도적으로 차단된 사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번 반환 결정은 특정 부지를 둘러싼 예외적 조치이지만, 같은 시기·유사한 방식으로 재산을 잃은 다른 흑인·소수자 커뮤니티에 대한 재검토 요구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100년 만에 돌아온 2,000만 달러짜리 토지는, 단지 ‘비싼 땅’이 아니라 미국 사회가 불평등의 역사와 어떻게 마주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상징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