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 합동 폭격기, 도쿄를 겨냥한 시위성 비행 논란

중국과 러시아가 일본 주변에서 합동으로 전략폭격기를 띄우며 사실상 도쿄를 겨냥한 무력 시위를 벌였다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폭격기들은 일본 영공에 진입하지는 않았지만, 항적을 그대로 연장하면 수도 도쿄와 미 해군·해상자위대 기지가 밀집한 요코스카까지 도달하는 직선 경로가 되는 것으로 분석되면서 일본 안보당국이 예의주시하고 있다. 같은 시기 중국 항모전단과 미·일 연합훈련까지 중첩되며 동중국해·태평양 일대에서 긴장이 크게 고조된 상황이다.
도쿄·요코스카 잇는 직선 항적, “수도권 타격권 과시” 평가

중국·러시아 폭격기 편대는 9일 오키나와현 오키나와섬과 미야코지마 사이의 미야코 해협을 통과해 시코쿠 남쪽 태평양 상공까지 비행했다. 일본 방위성 통합막료감부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이들은 처음에는 동남 방향으로 비행하다가 오키나와 남쪽 해역에서 약 90도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북동쪽으로 상승하는 항적을 그렸다. 일본 언론과 군사 전문가는 “이 지점에서 그대로 직진했다면 도쿄 상공과 요코스카 기지를 지나게 되는 궤적”이라며 “수도권 타격 능력을 시각적으로 과시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중국 폭격기가 도쿄 방향으로 비행한 전례는 있지만, 중국과 러시아 전략폭격기가 함께 이 루트를 활용한 것은 처음이라는 게 일본 측 설명이다.
H-6K와 Tu-95 투입, 상징성 큰 ‘핵 투사 플랫폼’ 시위

이번 합동 비행에 투입된 기종 가운데 특히 주목받은 것은 중국의 H-6K 폭격기와 러시아의 Tu-95 폭격기다. H-6K는 중국이 개량한 장거리 폭격기로,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장거리 공대지 순항미사일을 운용할 수 있어 일본 입장에서는 ‘핵 투사 플랫폼’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Tu-95 역시 냉전 시기부터 운용돼 온 러시아의 대표적인 전략폭격기로, 양국이 이 두 기종을 나란히 띄운 것 자체가 상징적 메시지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 정부 대변인은 이 비행을 “일본을 겨냥한 강압적 행동”이라고 규정하고, 외교 경로를 통해 중국·러시아에 엄중 항의했음을 밝혔다. 한국과 일본 공군은 양국 방공식별구역 인근을 통과한 폭격기 편대에 대응해 전투기를 긴급 발진시키기도 했다.
오키나와 포위하듯 움직인 항모 랴오닝, 260회 이함·착함 훈련

공중에서의 압박과 더불어, 해상에서는 중국 항공모함 랴오닝함 전단이 오키나와를 포위하듯 움직이며 기동을 이어갔다. 일본 방위성에 따르면 랴오닝함은 5일부터 12일까지 동중국해와 필리핀해 일대를 항해하면서 오키나와 본섬과 인근 도서 사이를 S자 형태로 오가고, 미나미다이토지마 주변을 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도는 등 ‘섬 포위’에 가까운 항적을 보였다.
이 기간 함재기와 헬기의 이착함은 수백 회에 달해, 사실상 실전 수준의 항모 운용훈련이 실시된 것으로 평가된다. 일본은 자위대 호위함과 초계기, 전투기를 잇달아 투입해 중국 함대를 추적하면서 레이더 조사 논란까지 겹쳐 긴장이 높아졌다.
B-52·F-35 앞세운 미·일 연합훈련, ‘맞불 시위’ 구도 고착

중·러의 합동 폭격기 비행과 중국 항모의 기동에 맞서 미국과 일본도 전략자산을 동원한 연합훈련으로 대응했다. 미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함과 이지스 구축함, 해상자위대 호위함은 혼슈 중부 남쪽 태평양 해역에서 대공·대함전을 포함한 연합훈련을 실시해 동맹의 대응태세를 과시했다. 이어 중·러 폭격기 비행 직후인 10일에는 미 공군 B-52 전략폭격기 2대와 항공자위대 F-35 스텔스 전투기 3대, F-15 전투기 3대가 서일본 인근 상공에서 합동 비행훈련을 진행했다. 일본 방위성은 이번 훈련이 “강화되는 안보 환경 속에서 미·일 동맹의 억지력과 대응 능력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만·안보 법제 둘러싼 중·일 갈등, ‘폭격기 외교’로 비화

이번 군사적 긴장의 배경에는 대만 문제와 관련한 중·일 갈등 심화가 놓여 있다는 분석이 많다. 일본 총리가 ‘대만 유사시 일본 개입 가능성’을 언급한 이후, 중국은 일본 여행·유학 자제 권고, 일본산 수산물 추가 수입 제한 등 경제·외교 분야에서 보복성 조치를 잇따라 내놨다. 여기에 합동 폭격기 순찰과 항모 기동 등 군사적 무력 시위를 더해 일본을 다방면에서 압박하겠다는 전략이라는 해석이 제기된다. 일본 내부에서는 방위비 증액과 ‘반격 능력’ 보유 추진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이런 위협 사례가 활용되고 있지만, 동시에 전략폭격기와 항모, 스텔스 전투기가 좁은 공역과 해역에서 맞부딪치는 양상이 상시화되면 우발적 충돌이나 오판 가능성도 커진다는 우려가 함께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