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저케이블, 인터넷·전력의 ‘해저 동맥’이 되다

오늘날 국제 인터넷·통신 트래픽의 거의 대부분은 해저 광케이블을 통해 오간다. 수백~수천 킬로미터 길이의 케이블 수백 가닥이 대륙과 대륙, 섬과 본토를 잇고 있고, 일부 자료에서는 “국제 데이터의 약 99%가 해저케이블로 흐른다”는 통계가 나올 정도다.
케이블 자체는 직경 2㎝ 안팎의 가느다란 구조지만, 내부에는 다중 보호층과 광섬유가 들어 있어 수심 6,000m급 심해 압력과 어선·닻·지진 등 다양한 외력을 견뎌야 한다. 고압 직류(HVDC) 해저 전력 케이블은 대규모 해상풍력 발전단지와 육지를 연결하거나, 국가 간 전력 연계를 통해 에너지 안보를 뒷받침하는 인프라로도 급부상하고 있다.
‘빌려 쓰던 나라’에서 10년 만에 독립 선언까지

한국은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장거리 해저 전력 케이블을 자체 설계·생산·시공할 수 없었고, 일본·유럽 기업들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했다. LS전선이 동해시에 해저케이블 공장을 세우고 본격적으로 이 시장에 뛰어든 것은 2009년 전후로, 불과 10여 년 전이다. 당시 국내 해저케이블 프로젝트도 국제 입찰을 통해 외국 업체를 우선 검토했으나, LS전선이 기술 평가와 가격 경쟁에서 우위를 입증하면서 비로소 ‘자국 해저케이블’ 시대가 열리게 됐다.
LS전선은 2010년대 초 국내 연안 프로젝트 성공을 바탕으로 중동·미국·유럽 수주에 잇달아 성공했고, 2012년 카타르 해상 전력망 사업에서는 일본과 유럽 유력 업체를 제치고 4억 달러대 계약을 따내며 기술력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세계 톱티어로 올라선 LS전선의 위상

현재 LS전선은 장거리 해저 전력 케이블을 설계·제작하고, 특수 케이블 부설선으로 해상에 포설하며, 육상 변전소·연계 설비까지 묶어 공급할 수 있는 턴키 수행 능력을 갖춘 몇 안 되는 기업으로 꼽힌다. 업계에서는 프랑스·독일계 업체들과 함께 LS전선이 글로벌 해저 전력 케이블 시장 물량의 80% 이상을 나눠 맡는 ‘빅 플레이어’라는 평가를 내린다.
회사는 동해 공장에 두 번째·세 번째 해저케이블 공장을 확장하고 HVDC(고압 직류) 생산라인을 구축했으며, 최근에는 전용 해저케이블 부설선과 1만 톤급 이상 케이블 로딩 능력을 확보한 LS마린솔루션을 통해 유럽·북미 대형 프로젝트에 본격적으로 도전하고 있다. 2020년대 들어 LS전선이 대만 해상풍력, 북해·북미 연계선, 국내 완도-제주 간 해저 전력망 사업 등에서 연속 수주를 거둔 것도 이러한 종합 역량이 결집된 결과라는 평가다.
일본·유럽 추격 넘어 ‘게임 체인저’로

LS전선의 약진은 단순한 기술 추격을 넘어 시장 구조 자체를 흔드는 수준으로 평가된다. 한때 아시아·태평양 해저케이블 사업은 일본 기업들이 사실상 독점 구조를 이루고 있었지만, 2010년대 이후 LS전선이 국제 입찰에서 일본 업체를 여러 차례 제치며 판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특히 장거리·대용량 HVDC 전력망, 해상풍력 연계선 등 차세대 에너지 전환 프로젝트에서 한국산 케이블이 주력 옵션으로 자리 잡으면서, 일본·유럽 업체들이 가져가던 물량 일부가 한국으로 이동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LS전선은 미국에서도 1조 원 규모 이상을 투자해 해저·HVDC 케이블 공장을 건설 중인데, 이는 북미 재생에너지·송전망 확충 수요를 선점하겠다는 전략적 행보로, 완공 시 아시아 최대급 생산·수출 기지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해저 네트워크 강국’으로 향하는 한국의 다음 단계

한국은 이제 해저 전력 케이블에 이어 통신용 해저 광케이블, 해상풍력·해양플랜트용 특수 케이블, 실시간 모니터링·진단 시스템 등으로 영역을 점차 넓혀가고 있다. LS전선과 계열사들은 센서·데이터 분석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케이블, 케이블 상태를 실시간 진단하는 통합 관제 시스템을 개발하며, 단순 제조업체가 아닌 ‘해저 네트워크 솔루션 기업’으로의 전환을 추진 중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일본에 비싼 사용료를 내고 케이블을 빌려 쓰던 한국이, 이제는 일본·유럽과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일부 구간에서는 앞서가는 기술·시장 파트너로 인정받고 있다는 점은 상징성이 크다. 해저케이블 분야에서 축적한 경험과 설비, 글로벌 레퍼런스는 앞으로 데이터 센터 해상 접속, 해저 저장장치, 해양 안보 인프라 등 새로운 시장을 여는 기반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