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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라 불리는 핵심 기술을" 고대로 빼돌려서 팔아 먹은 '이 전차'

aubeyou 2025. 12. 8. 12:10

K2 흑표의 심장부, 양압·냉난방 시스템이 왜 중요한가

K2 흑표는 차체 내부에 ‘양압식(CBRN) 보호 시스템’을 탑재해 승무원 탑승 공간 압력을 외부보다 높게 유지함으로써, 화학·생물학·방사능 물질이 틈새로 유입되지 않도록 설계돼 있다. 차내 공조장치는 분당 180㎥급 환기 능력과 7,500kcal/h급 냉방 성능을 제공해, 장시간 작전 중에도 승무원의 생리적·전투 수행 능력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시스템은 단순 냉난방 설비가 아니라, 화생방·핵 공격 상황에서 전차가 ‘기동 지휘소’로 계속 싸울 수 있게 만드는 생존성 핵심 기술로, 해외 수출형(K2NO, 이라크·폴란드 제안형)에서도 경쟁력 포인트로 강조된다. 이 기술이 외부로 유출되면, 적성국·경쟁국이 유사 시스템을 빠르게 모방하거나, 역으로 한국 전차의 보호 개념·약점을 분석하는 데 악용될 수 있어 안보 리스크가 크다.

어떻게 빼돌렸나: 개발보고서부터 시험 데이터까지 통째 유출

언론·법원 보도에 따르면, 피고인 A·B씨는 2017년 재직 중이던 방산업체에서 K2 전차용 양압·냉난방장치 개발보고서, 상세 설계도, 각종 환경·내구 시험 데이터 등을 무단 복제했다. 이후 동종업체로 이직하면서 이 자료를 가져가, 사실상 원 설계·시험 데이터를 토대로 ‘차량·시설용 양압장치 필터’ 관련 특허를 신규로 출원한 것으로 조사됐다. 법원은 이 과정에서 정당한 기술 이전·라이선스 절차 없이 기존 회사의 영업비밀을 이용해 경쟁사 이익을 도모했으며, 이는 방위사업법과 부정경쟁방지·영업비밀보호법이 금지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1심 판결: 엔지니어 실형, 회사 벌금

수원지법 평택지원 형사2단독 재판부는 방위사업법 위반, 업무상 배임, 영업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2년 6개월, B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기술 유출 사실을 부인하며 반성하지 않고 있고, 유출 대상이 국가 전략무기의 핵심 기술로 사회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지적하며 집행유예 없이 실형을 선택했다. 함께 기소된 이직 업체 법인에는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으로 벌금 2,000만 원이 선고됐다. 형량 자체는 크지 않아 보일 수 있지만, 통상 영업비밀 사건에서 실형이 나오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방산기술 유출에 대해 법원이 상당히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사례로 평가된다.

‘한국의 역사’가 담긴 방산 기술, 왜 보호가 더 민감한가

K2 흑표는 한국이 독자적으로 설계·양산해 수출까지 이룬 3세대+급 전차로, 자주국방과 방산 수출 역사에서 상징성이 크다. 전차 한 대에는 수천 개 부품과 다층 협력사 기술이 들어가며, 특히 CBRN 보호·사격통제·능동방호 체계는 해외 주요 방산업체와 경쟁할 수 있는 핵심 영역이다. 이런 분야에서 축적된 설계·시험 노하우가 인력 이동 과정에서 통째로 빠져나가면, 국내 방산 생태계의 기술 우위와 신뢰도가 동시에 흔들릴 수 있다. 더구나 한국은 폴란드·노르웨이·루마니아·이라크 등과 K2 수출·현지 생산 협상을 진행·검토하고 있어, 기술보호 부실은 곧 수출 신뢰도 문제로 직결된다. 이번 사건이 단순한 회사 간 영업비밀 분쟁이 아니라, “국가 전략무기 기술을 해외·타사에 팔아먹을 수도 있었다”는 우려를 자극한 이유다.

특허로 ‘세탁’된 유출 기술, 제도적 허점 드러내

이번 사건에서 특히 문제로 지적된 대목은, 유출된 기술을 기반으로 피고인들이 필터·양압장치 관련 특허를 출원했다는 점이다. 특허제도는 본래 발명을 공개하는 대가로 일정 기간 독점권을 주는 장치이지만, 원천이 영업비밀·국방기술인 경우 “불법 취득 지식의 합법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

 

방산 분야에서 실제 개발을 수행한 협력사·연구소의 기밀 문서를 개인이 가져나와, 타사 명의·본인 명의 특허로 올려 버리면, 원 개발사는 나중에 자사 기술을 쓰려 할 때도 특허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 이번 판결은 법원이 이런 구조를 “업무상 배임과 영업비밀 침해”로 명확히 본 사례지만, 동시에 특허 심사 단계에서 방산기술 유래·소유관계를 더 촘촘히 확인할 필요성을 드러낸 셈이다.

앞으로 필요한 방산기술 보호 장치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디지털·인적 보안을 동시에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첫째, 설계도·시험데이터 등 중요 문서는 내부망·암호화·접근권한 분리 등 기술적 보안을 통해 외부 저장장치 반출을 원천적으로 줄여야 한다.

 

둘째, 핵심 인력 이직 시 사전 신고·경업 제한 합의, 퇴직 전·후 데이터 반출 점검 등 인사·법무 절차를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

 

셋째, 방산업체 간 기술협력·하도급 구조 안에서 “누가 어떤 기술에 대해 어떤 권리를 갖는지”를 명확히 문서화하고, 이를 어긴 기술 이전·특허 출원에는 민·형사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동시에 정부는 방산 R&D 지원과 수출 확대 정책을 펴면서도, 기술 보호 실패 시 계약·인증·수출지원에서 불이익을 주는 등 ‘채찍과 당근’을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K2 흑표 양압·냉난방 기술 유출 사건은, 한국 방위산업이 양적 성장 단계를 지나 “핵심 기술을 어떻게 지키며 고부가가치화할 것인가”라는 다음 과제를 정면으로 보여 준 사건으로 남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