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보유국 한국, ‘핵잠 공식 추진’이 특별한 이유

한국이 미국과의 조인트 팩트시트 발표를 통해 핵추진 잠수함(핵잠) 건조 승인이라는 30년 숙원에 첫발을 떼면서, 비핵보유국 가운데 호주·브라질에 이어 세 번째로 핵잠 운용을 공식 추진한 국가가 됐다. 현재 핵잠을 실제로 보유한 국가는 미국·러시아·중국·영국·프랑스·인도 등 사실상 모두 핵보유국이며, 비핵보유국의 핵잠 보유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한국의 시도는 국제 비확산 체제와 역내 안보 지형 모두에 큰 파장을 낳고 있다.
한국은 선체와 다수의 시스템은 자체 건조, 핵연료는 미국 공급을 전제로 하는 구상을 밝히며, 기술 문제뿐 아니라 미국 의회·IAEA·주변국 설득이라는 복합 외교 과제를 동시에 떠안게 됐다.
왜 핵잠인가: 북한 SLBM·중국 해군까지 겨냥한 ‘은밀한 전략자산’

핵추진 잠수함은 디젤-전기식 잠수함과 달리 고농축 또는 고순도 저농축 우라늄을 연료로 하는 원자로를 탑재해 공기 공급 없이 장기간 잠항이 가능하고, 속도와 작전반경에서도 압도적인 우위를 갖는다. 한국이 구상하는 모델은 핵탄두가 아니라 순항미사일·어뢰·대잠센서를 탑재한 ‘공격형 핵잠(SSN)’ 성격으로, 북한이 추진 중인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탑재 전략핵잠수함(SSBN)을 추적·견제하는 데 최적화된 플랫폼으로 평가된다.
은밀성이 높은 핵잠은 북한 잠수함의 기습적 SLBM 발사 징후를 사전에 탐지·추적하고, 동시에 동중국해·서해·남중국해 등에서 중국·러시아 해군의 활동을 감시하며 한국과 동맹국의 해상교통로(SLOC)를 보호하는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의 핵잠 추진은 단순 전력 증강을 넘어, 역내 해양 전략 판도에 변화를 예고하는 카드로 주목받고 있다.
기술·비용·작전 환경: ‘만능 전력’은 아니라는 내부 반론도

다만 핵잠이 만능 카드라는 시각에는 국내외에서 이견이 존재한다. 한반도 주변 작전 환경은 수심이 얕고 복잡한 연안이 많은 편이어서, 심해 장기 작전을 주특기로 하는 핵잠의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군사 전문가들 사이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또한 소형모듈원자로(SMR)를 포함한 잠수함용 원자로 개발, 방사성 폐기물 관리, 안전 규제 체계 구축 등에 막대한 연구·인프라 비용이 수반되며, 호주의 오커스(AUKUS) 사례처럼 수십 년에 걸쳐 수백조 원 규모의 재정 투입이 필요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같은 예산으로 대잠 초계기, 소나망, 무인 수중체계 등 다층 대잠망을 구축하는 편이 한반도 방어에는 더 효율적일 수 있다고 주장해, ‘핵잠 vs 대체 전력’ 논쟁도 함께 불붙고 있다.
핵연료·IAEA·NSG…한국을 시험하는 비확산 체제

비핵보유국이 핵잠을 운용하려면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조치 체제 안에서 핵연료를 군사적 플랫폼에 사용하면서도 핵무기 전용 의심을 받지 않는 새로운 검증 모델을 설계해야 한다. 한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핵공급국그룹(NSG) 회원국으로, 미국 몰래 잠수함용 핵연료를 조달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며, 실질적으로 미국의 동의 없이는 다른 나라로부터도 연료를 들여오기 어렵다.
호주 오커스 사례처럼 IAEA와 별도 협정을 맺어 ‘비금지 군사 활동’에 사용되는 잠수함용 우라늄을 안전조치에서 부분 예외로 하되, 핵무기 전용이 불가능하다는 새로운 검증 방식을 합의해야 한다는 점에서, 한국은 호주-IAEA 협상의 전례를 참고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이유로 한국의 핵잠 추진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비확산 체제가 어디까지 비핵보유국의 ‘핵추진 플랫폼’을 허용할지를 시험하는 사례로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다.
미국 의회·동맹 정치, 그리고 중국·일본의 시선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의 핵잠 보유가 동맹의 대잠·정찰 능력을 강화해 중국·북한 견제에 도움이 되는 동시에, 지역 군비경쟁과 중국 반발을 자극하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오커스만 해도 중국·러시아가 IAEA와 유엔 무대에서 “NPT 원칙을 훼손하는 위험한 선례”라고 비판하며 정치 쟁점화해 왔고, 한국의 핵잠 추진 역시 유사한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일본 내부에서는 이미 한국의 핵잠 추진을 계기로 자국도 핵잠 도입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동북아 전반의 해군 군비경쟁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동시에 미국 의회는 핵연료 이전·군사 원자력 협정을 승인해야 하는 최종 관문이어서, 한국 정부가 향후 가장 집중해야 할 외교전이 ‘대미 의회 설득’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비핵화 담론·전략 자율성까지 흔드는 딜레마

마지막으로, 핵잠 추진은 한반도 비핵화와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 논의에도 복잡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북한은 이미 한국의 핵잠 계획을 “핵무장 시도”로 규정하며 비핵화 협상 거부 명분으로 활용할 조짐을 보이고 있고, 남북이 1991년 채택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둘러싼 해석 논쟁도 재점화될 수 있다. 또 핵잠 연료를 미국에 의존하는 구조에서는 장기적으로 한국의 방위정책이 미국 의회·정권 변화에 더욱 크게 종속될 위험이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그럼에도 정부와 다수 군사 전문가들은, 북한의 핵·미사일 전력과 중국 해군력 급증 속에서 한국이 ‘핵무기 없는 핵잠수함’이라는 절충적 선택을 통해 억제력을 높이면서도 NPT 체제 안에 남아 있으려는 전략적 실험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핵잠 추진을 둘러싼 논쟁은 당분간 동북아 안보 의제의 중심에 서게 될 것이라는 데에는 대체로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