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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잠수함 시대 꼭 열어달라" 부탁한 한국 잠수함 살아있는 역사 초대 함장

aubeyou 2025. 11. 27. 13:36

“잠수함부대의 기초를 세운 개척자”

안병구 초대 함장은 11월 19일 진해군항에서 장보고함의 마지막 2시간 항해에 동승해 “여기가 내 청춘을 바친 바다”라며 “미지의 세계였던 대한민국 바닷속을 개척한 해양의 개척자 장보고함의 처음과 마지막을 함께하게 돼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그는 SNS와 인터뷰에서 “한국 해군 1번 잠수함 장보고함은 잠수함부대의 기초를 만든 잠수함”이라며 “이후 모든 잠수함은 장보고함이 했던 바를 따르며 잠수함 전력이 성장했다”고 회고했다. 퇴역을 앞둔 장보고함을 두고 “한마디로 개척자였고, 장하다”고 표현한 대목에는 첫 세대 지휘관의 자부심이 고스란히 담겼다.

지구 15바퀴, 34년 무사항해의 기록

장보고함은 독일 HDW 조선소에서 1988년 건조를 시작해 1991년 진수, 1992년 해군 인수 후 34년간 실전 임무를 수행한 1,200t급 디젤잠수함이다. 1992~2025년 동안 약 34만2,000해리(약 63만3,000㎞)를 항해해, 지구 둘레 15바퀴가 넘는 거리를 무사히 돌았다. 2004년 환태평양훈련(RIMPAC)에서는 미 항공모함을 포함한 30여 척의 함정을 상대로 모의공격을 수행하면서 단 한 번도 탐지되지 않았고, “미 핵항모도 내 어뢰 맞았다”는 전설 같은 일화로 한국 잠수함 운용 능력을 세계에 각인시켰다. 해군은 마지막 항해를 마치고 진해군항에 입항한 장보고함을 맞이하며, 정박 중이던 모든 잠수함이 일제히 기적을 울려 임무 완수를 축하했다.​​

“미지의 바다를 여는 전략 보고서가 첫 단추”

장보고함 도입 전까지 한국 해군에는 잠수함이 한 척도 없었고, 북한은 이미 25척 이상의 잠수함을 보유한 상태였다. 당시 대잠전 훈련은 구축함 위주로 이뤄졌고, 초급장교들에게 인기 있는 훈련이자 ‘엘리트 코스’였다. 중위였던 안병구 장교는 미 해군 주관 대잠전 유학을 다녀와 6개월간 잠수함 전술·기술을 집요하게 연구했고, 소령 진급 후 해군참모총장의 지시로 ‘잠수함 전력 획득 전략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는 한국 첫 잠수함 도입의 전략적 청사진이자 장보고함 건조·승조원 교육·운용체계 구축의 기초가 되었고, 이후 한국 해군 잠수함 사업 전체를 이끄는 시발점이 됐다. 안 전 준장은 “잠수함은 모든 기술의 집합체라 손이 안 간 곳이 없다”며, 승조원에게는 전문성·집요함·서로에 대한 배려가 필수라고 강조해왔다.

장보고에서 도산 안창호까지, 잠수함 강국으로

장보고함이 해군에 인도된 1992년, 한국은 북한에 비해 잠수함 전력에서 절대 열세였다. 하지만 장보고급 9척, 손원일급(1,800t급) 9척을 잇따라 전력화하고, 2018년에는 국내 최초 3,000t급 국산 잠수함 도산 안창호함(KSS-III)을 진수하며 잠수함 강국 반열에 올랐다. 도산 안창호함은 국내 독자 기술로 설계·건조된 첫 중형 잠수함으로, 길이 83.3m·폭 9.6m,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6발을 수직발사관에서 운용할 수 있고, 국산화율 76%를 달성했다. 현재 한국은 20척이 넘는 잠수함 전력을 갖추고 해외 수출까지 추진하면서, 장보고함 시절에 상상하기 어려웠던 ‘수출형 잠수함 강국’으로 성장했다.

“핵잠 시대 열어달라, 승조원은 파격 보상을”

안 초대 함장은 장보고함 마지막 항해 후 인터뷰에서 “장보고함이 잠수함 시대를 열었듯 후배들이 핵추진잠수함 시대를 열어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한미 동맹·북핵 위협·원양 작전환경 등을 고려하면 우리 해군이 언젠가 핵잠을 가져야 한다는 데엔 이견이 크지 않을 것”이라며, 정치·외교적 난제를 차근차근 풀어 핵잠 운용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동시에 “군의 동기부여는 진급과 보상, 두 가지뿐”이라며, 고위험·고난도 임무를 수행하는 잠수함 승조원에 대해 확실한 보상과 파격적 대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잠수함 병과의 우수 인력 확보와 장기복무 유인을 위해 인사·복지·수당 체계 개편이 시급하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마지막 함장, “끝까지 안전하게… 표어가 지켜줬다”

장보고함의 마지막 함장은 연합해군사령부에서 다국적 해양안보작전을 수행하던 중 2025년 2월 부임한 이제권 소령으로, 장보고급에서 소령이 함장을 맡은 첫 사례다. 그는 “역대 대령·중령급이 지휘해 온 1번 잠수함의 마지막을 책임진다는 사실이 큰 부담이었지만, ‘끝까지 안전하게’ 운용하는 데 모든 판단을 집중했다”고 말했다. 노후 플랫폼 운용 방침에 대해 “잠수함에서 안전은 절대 원칙”이라며, 훈련함 전환 이후에도 교범과 원칙에 따라 절제된 전비태세를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장보고함의 유산은 초대 함장이 남긴 표어, “확인은 생존의 지혜, 숙달은 필승의 열쇠”였다. 이 표어를 승조원들과 공유하며 34년간 단 한 번의 중대 사고 없이 임무를 마칠 수 있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마지막 항해를 초대 함장과 함께 마친 그는 “34년의 시간을 한 장면으로 압축한 듯했고, 마지막 함장으로서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기록을 남기고 싶다”고 소회를 전했다.